▲ 이종서 울산대 교수·역사학
부모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들이다. 그런데 누가 더 중한 분인가 하는 생각은 시대마다 달랐다. 조선후기에는 단연코 아버지가 중한 분이었다. 이는 제사에서 확인된다. 조상 제사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리고 이 분들의 배우자인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에게 드렸다.

이 분들의 혈연관계를 보면 남자는 계속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다. 반면에 여자는 혈연관계가 없다. 남자는 혈연으로 이어지기에 제사를 받고, 여자는 혼인으로 관계되기에 제사를 받는 것이다. 만약, 증조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낳고서 개가하거나 쫓겨나기라도 했다면 그 분은 제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

이렇듯 남자가 기준이 된 것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기가 뭉쳐서 생명이 되는데 그 기는 남자에서 남자로만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생명을 준 분이고 어머니는 그 생명을 키워준 분이 된다. 선비가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네’라고 중얼거리는 광경을 어느 사극에선가 보았을 것이다. 유교 경전인 시경의 한 구절이다. 아버지가 날 낳으시니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중한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보편적 신앙이었던 불교에서는 달랐다. 불교에서 생명은 본래 존재하는 것으로 부모님의 몸을 빌어 사람의 형태를 갖춘다고 보았다. 부모님의 은혜는 낳고 기른 수고 때문이지 생명의 유무를 결정하는 근원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수고로움이 더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중한 분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부모은중경의 열 가지 은혜에서 잘 드러난다.

첫째 10달 동안 잉태하여 지켜주는 것, 둘째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셋째 자식을 낳고 모든 근심을 잊는 것, 넷째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는 것, 다섯째 자식은 마른자리에 뉘고 자신은 진자리에 눕는 것, 여섯째 젖 먹여 키우는 것, 일곱째 깨끗하게 씻겨주는 것, 여덟째 자식이 멀리 갔을 때 걱정하는 것, 아홉째 자식의 행복을 위하여 악업을 무릅쓰는 것, 열째 끝끝내 애처롭게 여기는 것이다.

이 10가지 은혜를 살펴보면 대부분 어머니의 은혜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중하게 여긴 반면, 고려에서는 어머니를 더 중하게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회에서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은 서로 용납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달랐다.

이종서 울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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