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인정에서부터 소통은 시작

끊임없는 토론 통해 창의력 극대화

리더의 경청은 조직화합 위해 중요

▲ 고경수 삼성비피화학 울산공장장·전무
속임수라고 해서 모두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은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면 진실을 말한다 해도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일본에서 대규모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내 최대 우유업체가 진원지로 지목됐지만, 정작 회사 측은 책임을 회피하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중독 환자가 1만명을 넘어서게 되면서, 결국 보건 당국에 의해 강제리콜 조치가 내려지게 됐다. 그제야 우유업체 사장은 “공장 기계 중 일부가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감염된 기계는 가동을 중단했다”며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기계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이 밝혀졌고, 이에 분노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펼치면서 결국 회사가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철학자 칸트는 ‘절대적 도덕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다. 거짓말은 인생을 왜곡하고 상대방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복과 변화가 두려워서, 혹은 체면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데 망설이곤 한다. 그러나 진실은 진실이기에 밝혀야 하는 것이다. 식중독 사고를 일으킨 우유업체가 거짓말로 당장 혹은 얼마 동안 위기를 모면하기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모두에게 협조를 구했다면 진실한 소통을 통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얻는 지혜-경청>이라는 책을 보면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즉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면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나와 너를 위한 경청은 공감을 형성하며, 모두를 위한 경청은 상생의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역시 “100명 중 1명이 반대한다면, 그 1명의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며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견이 틀렸다면 99명이 옳다는 사실을 재확인 할 수 있을 것이고, 옳다면 자칫 놓칠 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수결에는 51%가 전체를 대변하는 불합리성이 내포돼 있다. 하지만 자유토론이 수반된다면 다수결의 결과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더의 경청은 대단히 중요하다. 조직의 일원이 소수의 입장에 서거나, 그러한 입장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한다면 조직의 화합을 위해 경청만큼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인텔의 엔디 그로브 전 회장은 ‘Agree to disagree(반대하기에 동의하기)’ 방식을 그의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회사의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드래프트 형태로 모든 직원들에게 공지했고, 또한 전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반대의견을 한 가지씩 내도록 했다. 이렇게 모아진 반대의견들 중 설득력을 가진 의견들을 추려 직원에게 돌려보냈고, 그것에 대한 반대의견을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은 더 이상의 반대의견이 없을 때까지 반복됐고, 그렇게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도 없을 뿐 아니라 집행자조차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 엔디 그로브 전 회장의 이러한 경영방법은 자칫 지나친 과정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직원들의 의사결정 참여가 형식을 넘어 진정한 쌍방향 소통으로 정착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보다 합리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도가의 대표자인 장자에게서도 소통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장자의 소통 철학은 크게 인지, 실천, 변화의 3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 ‘인지’는 상대방이 나와 틀린(wrong) 존재가 아니라 다른(different)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에서 소통이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단계인 ‘실천’은 상대가 원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체와 객체가 상호 작용하고, 나아가 주체가 이전과는 다른 주체로 바뀌는 것이 바로 소통의 최종 목표인 ‘변화’인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문명국으로 불렸던 중국이 19세기에 이르러 영국에게 추월당한 것은 창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황제 한 명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했던 중국과 달리, 영국은 지속적인 토론과 소통 속에서 창의성을 극대화했다. 결국 경청과 참여, 토론이야말로 세계의 역사를 바꾼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셈이다.

고경수 삼성비피화학 울산공장장·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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