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무엇인가 생각난듯 갑자기 소리친다. "기사양반, 내가 어디로 가자고 했지"". 택시기사 화들짝 놀라며 "깜짝이야, 할머니 언제 탔어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치매시리즈의 한 부분이다.

 세태를 반영, 술안주감으로 회자되던 각종 시리즈는 사오정·허무시리즈에서 치매시리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엇박자로 돌아가는 현실이 투영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망"의 의학적 용어인 치매는 사람의 정신(지적)능력과 사회적 활동능력 소실을 의미, 원인질환종류와 정도에 따라 가벼운 기억장애부터 심한 행동장애까지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병에 걸린 환자들은 불안해 하기도 하고, 공격적이 될 수도 있으며, 집을 나와서 길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방황할 수도 있는 등 행동반경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걱정의 대상이 된다.

 현대자동차노조 등 울산지역 13개 사업장 조합원 3만여명이 25일 오후 1시부터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일정에 따라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전교조 연가투쟁, 화물연대파업, 조흥은행노조파업 등 전국적 파업소용돌이 속에서도 비교적 한켠 물러나 있던 울산지역 노동계가 파업현장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번 파업에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덕양산업,세종공업, 한일이화, 한국프랜지, 고려산업개발, 대덕사, 한국TRW, 태성공업 등이 동참한다고 밝혔다.

 노동운동의 메카, 울산에서 "하투"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인 동시에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전국적으로는 100여개 사업장 10만명의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에 따라 부분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맞서 불법적인 파업과 태업, 폭력행위 주도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고건 국무총리와 김진표 경제부총리, 권기홍 노동부 장관 등 8개 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정책조정회의를 갖고 파업 대책을 마련, 기본적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해 협상을 통해 타결을 이끌어내되 법질서 수호 차원에서 불법 파업을 주도한 사람에 대해서는 사후에 법과 원칙에 따라 반드시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기회 있을때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해 왔다. 꼬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이만한 처방도 없을 것이다. 또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자"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과 원칙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시점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데 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목소리로는 유연한 대처운운하고 있다.

 사실 법과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은 우리 사회 근간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원신청에 앞서 해당 관공서에 아는 사람이 없나 먼저 살피는게 습관처럼 돼 버린지 오래다. 소위 빽줄을 찾는 것으로 그만큼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운영의 묘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부 파업사태에 대해 한국정부가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깨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론을 유도했고 노조의 불법행위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부당한 쟁의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주한 일본 기업인들의 지적은 국가가 불신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일관성이 결여된 법과 원칙은 치매증세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 예측을 어렵게 하면서 대중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라고 묻는데 "잘 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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