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을 살아온 울산을 고향으로 여기지만 아직도 일부 토박이들로부터 이런저런 견제를 당할 땐 말문이 막힙니다."

 태어난 고장에서 대학을 마칠 때까지 25년간 성장한 이후 울산에 터전을 잡아 어느누구 못지않게 울산사랑의 맹렬한 사회활동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한 50대후반 지인의 푸념이다.

 울산에서도 손꼽히는 성공한 기업인 중 한사람이라 할 수 있는 또다른 지인은 "일부 특정 토박이 인사들의 불합리한 텃세 때문에 아예 공장을 옮기는 문제를 심사숙고중"이라는 심정을 토로했다는 말도 들린다.

 40여년전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된 뒤 외지 노동인구가 급속히 유입되며 급팽창한 울산에서 "토박이타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좋고 공기맑던 고장에 대소 공장이 들어서면서 뒤따른 환경오염, 이주사업 등 토박이층의 애환도 이해못할 바 아니다. 대도시로의 성장에 비례하는 각종 범죄 등 도시화의 부작용도 비일비재하고, 이에 반비례해 옛 향수는 더욱 진한 향기를 뿜을만도 하다. 각종 분야에서 외지 유입인구에 밀리는데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울산에는 학연, 지연을 엮는 "계중"이라는 모임이 유달리 발달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같은 모임이 단순히 친목이나 유대 강화, 사회봉사활동을 위한 방편이라면 나쁠 게 없다. 다만 그 이상을 도모하면서 유입인구에게 위화감을 준다면 달리 봐야봐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의 인물됨됨이에 앞서 출신지역을 놓고 시비를 벌인 사례도 허다하다. 전체 시민의 20%에도 못미친다는 토박이층이 나머지 다수의 유입인구에게 헤게모니를 줄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도시간에도 무한경쟁시대인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도시민 전체의 화합과 삶의질 향상, 보다 살기좋은 울산을 만드는데 있어서 "토박이타령"은 극복해야 할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토박이 시민"이 문제가 아니라 토박이층을 대표하는 듯한 일부 인사들의 특권의식이 문제라고 본다. 수십년을 울산에 살면서도 사회활동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든지, 성공한 기업주가 자유로운 발언권 제한 때문에 "탈울산"을 고심하는 분위기라면 심각한 문제이다. 출생지역 따지기와 편가르기 경향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범시민적인 지역화합과 울산사랑을 논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흔히 울산을 서울과 닮은꼴이라고 한다. 전국팔도에서 모여든 도시민의 구성비 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도시민이 갖는 정주의식에서 차이가 많은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본보가 지난 5월15일 창간14주년을 맞아 울산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정주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7.1%가 "울산에서 평생을 살겠다"고 답해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됐다. 토박이층 비율을 몇배 웃도는데다, 종전의 "뜨내기 도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울시가 최근 시민 1천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6%가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도 지난 93년 43%, 94년 47%, 작년 74.7%에서 꾸준한 증가추세라고 한다.

 이같은 두가지 결과는 설문내용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엇비슷한 시점의 정주의식에 관한 조사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서울시민의 서울에 대한 애착과 애정이 울산 보다 강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면, 울산은 왜 약할까.

 그 이유야 문화혜택, 생활편의, 자긍심 등 갖가지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울산시민들이 서울시민 이상으로 지역을 사랑못할 이유는 없다. 이는 토박이나 특정계층의 울산이 아닌 시민모두의 울산으로 자리잡을 때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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