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가 윤모씨에 의해 7일 공개된 〈울산안내(蔚山案內)〉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잊혀져가는 일제 초기의 울산의 현황를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서 손색이 없다.

 일본어로 된 이 책은 통계자료를 대정 5년(1916년) 12월말 조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우리나라 전역을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만들어낸 울산안내 책자로 짐작된다.

 또 부록으로 울산의 성터를 기록한 "울산성지고"(蔚山城址考)가 담겨 있어 오늘날 논란을 빚고 있는 성의 이름에 대한 문제도 다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총 140여쪽의 이 책은 인쇄상태가 좋아 글자를 읽기가 수월할 뿐아니라 19장의 사진도 흑백이긴 하나 상태가 아주 양호해 당시의 건축물을 살피기에도 충분하다.

 오늘날 공공기관이 펴내는 시·군·읍·면지가 다루는 양식과 마찬가지로 울산의 연혁, 지리적 위치, 인구, 농·상·임업, 제정 등을 세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인구는 일본인 2천593명을 포함해 2만3천764가구에 12만4천343명이었다. 90여년만에 약 10배가 늘어난 것이다.

 지방행정을 보면 부내는 면적이 2천642리에 15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면소재지는 북정동에 있었고 면장은 김정국씨였으며 면서기는 6명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제정및 금융에는 세금과 물가가 적혀 있다. 당시 논은 상등지가 550엔 하등지가 400엔이었다. 쌀값은 1석에 2만1천500엔이었다. 현재는 약 32만원.

 농업 상업 어업 임업 등이 상세히 나와 있고 어업에는 특이하게 생선 이름이 모두 한글로 기록돼 있어 눈길을 끌고 고기잡는 시기와 주요어장, 가격 등도 소개돼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울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 울산만공립심상소학교, 방어진 공립심상소학교, 서생공립심상소학교 등 4개의 일본인 교육기관과 한국인 교육기관으로 울산공립보통, 언양공립보통, 울산공립간이농업의 공립과 개운, 진명, 일진, 일신학교 등 사립도 있었다.

 그밖에 종교, 위생, 경무, 통신 및 교통 등이 차례로 소개돼 있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울산성지고"에는 오늘날 학성으로 보이는 증성(甑城·부내면 학내동)과 서생성으로 불리는 옹성(甕城·서생면 서생리)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기타로 신학성(神鶴城), 읍성, 병영성, 구수영, 염포성, 선소성지, 관문성지, 기박산성, 유포성, 언양읍성 등 10개의 성이 소개돼 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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