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가 안락사, 낙태 등 국내 실정법에서 엄격히 금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의료행위들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는 내용의 "의사윤리지침"을 제정, 파문이 일고 있다.

 의협도 이 지침의 일부 내용이 실정법에 저촉되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의료현장에서 이같은 의료행위들이 상당 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선 의사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이 지침이 실정법의 두터운 벽을 넘어서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 등 매우 민감한 의료행위에 대해 일단 의사윤리측면의 면죄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지침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극적 안락사

 이번 의사윤리지침 내용 중 가장 민감한 사안이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 문제다.

 이 지침 제30조(회복불능 환자의 진료중단)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가족 등 대리인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생명유지치료 등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경우 의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협은 이 조항에 대해 회생이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 등이 인간적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의사가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자가 자연적 사망시점에 앞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의협은 강조한다.

 그러나 비록 환자와 가족 등 대리인의 문서요구를 전제로 하고 있기는 하나, 환자의 사망을 앞당길 수 있는 진료중단 자체가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와 별차이가 없기 때문에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시비가 불가피한 대목이 환자의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의학적, 윤리적 판단근거다.

 부인의 요구에 따라 무의식 상태의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가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지난 98년 보라매시립병원 사건이 시사하듯이 보는 관점에 따라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임신중절(낙태)

 지침 제54조(태아 관련 윤리) 제2항은 "낙태와 관련, 의학적·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합당한 경우에도 낙태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 역시 실정법 위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부나 배우자가 정신분열, 간질, 혈우병 등 유전성 질병을 갖고 있는 경우 △임신부나 배우자가 에이즈, 간염, 수두, 풍진 등 법정 전염병에 감염된 경우 △성폭력에 의한 임신 △친족간 성관계에 의한 임신 △임신이모체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경우 등 5가지 경우에 대해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현행 형법과 의료법은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낙태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의사는 곧바로 면허 취소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지침은 비록 함축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의학적·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합당한 경우" 낙태를 시술할 수 있다고 허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의학적·사회적 타당성은 의사가 판단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 실정법 허용범위를 넘어서 낙태가 시술될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제54조 제3항의 경우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태아 성감별 검사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 또한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태아 성감별검사를 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현행 의료법은 태아 성감별을 무조건 금지하고 있다.

 ◇인공수정과 대리모

 현행법 가운데 인공수정과 대리모 행위를 규제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이 문제는 사회적 윤리와 관행에 따라 타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침 제55조는 "인공수정 등 법률로 허용된 방법으로 불임부부가 자녀를 갖도록 돕는 행위는 허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일단 순기능적인 의미의 인공수정은 할 수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배우자 사이 이외의 인공수정은 장려되지 않는다"는 대목은 엄격한 금지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 도덕성 시비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지침 제56조는 "금전적 거래 목적의 대리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부분도 금전적 거래가 없는 친족간의 대리모 관계 등은 허용할 수도 있음을 의미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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