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이성을 추월한지 오래다. 어느 정도의 불합리성은 그것이 대중에게 미칠 힘의 크기에 따라 그대로 용인되기도 한다. 원본보다는 패러디, 심지어 패스티시(텅빈 패러디, 공허한 복사물)가 보편적으로 실천된 결과, 실제는 사라지고 이미지, 환영, 감각적인 구경거리, 쓸모 없는 허구가 문화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공간 사이를 매우는 매개수단의 발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과 특이한 시각의 종말을 가져왔고 문화간의 합병을 필요이상으로 추진해 버렸다.

 이러한 시대의 중간에 리모콘이 자리잡고 있다. 리모콘은 지극히 후기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정보소비자들로 하여금 정보소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소비구조에 끊임없이 연루되게 만든다. 그 결과 깊이 없고, 경박하며, 자기원인적 구조를 지니는 현대 문화에 깊숙히 빠져들게 한다.

 80년대 초에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리모콘은 현실적으로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2~3개의 지상파 방송채널을 대상으로 한 리모콘은 몸을 움직여 채널을 바꾸던 수고를 덜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21세기 정보환경은 전혀 다른 양상의 소비를 요구한다.

 수십 개의 채널, 심지어 수백 개의 채널을 마주할 때 리모콘이 없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리모콘이 없다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채널변경을 담당하는 그 누군가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면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리모콘의 간편성, 즉시성, 편재성(偏在性)으로 인하여 정보소비의 동시성, 유연성, 편리성이 증대된 대신 정보소비의 우발성, 비지속성, 오락성(유희성) 마저 증대되어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디지털의 시대라 일컫는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란 게 다 그렇지만 디지털 정책 또한 사회적 수요 보다는 정책이 앞섰고, 정책에 걸맞는 수요를 억지로 발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자생적 정보욕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책은 실패할 수 없다. 한국의 케이블정책이 그 좋은 예이다. 케이블정책이 성공할 만큼 수용자의 정보욕구가 높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에 늘어난 채널을 어떻게 소비시킬 것인가"하는 문제는 디지털 정책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리모콘은 개별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할 뿐더러 주체적인 소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풍부해진 채널은 리모콘을 통해 가난해지며, 늘어난 정보의 양은 오히려 리모콘을 통해 왜소해지며, 정보의 다원성은 리모콘을 통해 오히려 단순화되며, 절대적 정보소비시간은 늘어났지만 단위 채널·내용에 대한 소비시간은 오히려 짧아지게 되었으며, 문화의 다양성은 리모콘을 통해 오히려 방해받으며, 극복 가능해 보이던 공간적 한계도 리모콘을 통해 더 고립되거나 고립감을 느끼지 못하게 해준다.

 리모콘은 주체적인 필요와 소비를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반강제적인 소비와 채널이동을 부추긴다. 결국 리모콘을 통한 우리의 삶은 늘어난 채널과 정보량에 의해 식민화 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리모콘은 그것의 편리함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주체적 정보소비를 방해하며 우리를 자꾸만 객체적 존재로 내몰고 있다.

 결과적으로 리모콘은 천박한 대중문화의 양산에 기여하게 된다. 수용자들은 순간적인 화면이동, 지핑(Zipping)행위를 계속함으로써 영상에 내재된 내연적 의미를 숙고할 시간을 갖지 않는다. 정보생산자들도 얼마나 깊이 있게 소비했느냐 보다는 얼마나 많이 자기정보를 소비했느냐에 관심 갖는다. 둘째, 리모콘은 문화적 패스티시에 의한 깊이 없는 문화만을 양산한다. 정보의 역사성, 윤리성, 사회적 영향력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며 전적으로 상업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인다. 셋째, 오늘날의 자기반영적 성격과 패스티시적 성격을 지닌 문화는 리모콘을 통하여 어떤 절대적인 가치와 윤리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수용자를 탈중심화시키고 주체적 소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리모콘의 마력에 의한 우리 삶의 식민화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보소비방법에 대한 학습을 통하여 정보소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는가? 마치 발떨음이 심한 청소년들처럼 우리는 정보소비의 발떨음 증세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자성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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