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국제도시로 한단계 도약할 때입니다
동북아오일허브로 세계에 우뚝 서야
신라시대부터 국제무역항으로 명성

▲ 김두겸 울산 남구청장

지난해가 울산 본항 개항(1963년) 50주년이었고, BC 57년에 건국한 신라가 번성했던 6세기에 이미 울산만은 다양한 항만 시설을 갖추고 고대국가 신라의 중요한 국제무역항으로 아라비아인을 비롯한 세계와 통하는 우리나라 나들목이었던 만큼 예부터 울산은 항만과 조선, 석유화학 산업의 요충지로서 오일허브 구축의 최적지였다 할 것이다.

일찍이 15세기에는 울산 염포가 3포 개항지로 공인돼 부산포, 내이포와 함께 약탈과 사무역의 종지부를 찍고 공식적인 무역을 성립시켜 우리나라 무역항의 새로운 역사를 쓴 도시이다.

현재 울산 최고의 번화가인 삼산동 역시 일제때 후쿠호카행 비행기가 오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공항 역할까지 한 곳이기도 하다. 흔히들 여의도비행장이 먼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겠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1928년에 당시 체신국에서 경성비행장과 울산비행장 공사를 착수했었는데 울산은 그해 12월에, 경성은 이듬해인 1929년 4월에 완공했다고 되어있다.

근대에 와서 울산의 경우 본항 개항 이전에는 방어진항과 장생포항이 있었는데 많은 일본어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가 되어 방어진은 고등어 참치를 잡는 동해안 굴지의 어항이기도 했었다.

장생포에서는 ‘울산군수 할래, 고래배 탈래’라고 물으면 ‘고래배 탄다, 군수보다 고래배 타는게 더 좋다’고 했다고 한다. 또 ‘장생포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포경 전진기지로도 번성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모라토리움 선포로 상업포경이 금지되면서 포경산업은 쇠락했다.

그러나 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과 1963년 울산 개항장 지정은 울산이 공업항이자 무역항으로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접목되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실 역할을 다해 왔다.

물론 장생포 주변에는 석유화학업종을, 염포와 방어진 미포지구에는 자동차와 조선업을, 온산에는 국가산업단지가 설치되면서 항만지원 시설도 속속 들어섰다.

이렇듯 산업화와 도시발전을 이룩한 오늘날의 울산은 이러한 국제 개항장등이 없었다면 현실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울산은 급할시 소리를 들어가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는데 향후 신항개발이 완료되면 울산항은 총 130선석에 하역 능력 1만t, 부가가치는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다.

전문성과 기능이 확장되어 세계 3대 오일허브인 유럽ARA(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벨기에 앤드워프), 미국 걸프연안,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4대 석유물류 거점 항만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울산이 유럽 아메리카 대륙 등에서 동아시아 진입의 관문으로서 이미 동북아 오일허브 및 국제금융 중심지의 기치를 내건 만큼 북극항로에도 대비하고 동북아 시장을 선점해서 오일허브 터미널 울산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여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용 탱크터미널을 기반으로 석유물류의 저장, 거래, 중개산업 활성화 차원의 석유거래소 개설과 국제적인 트레이딩업체, 선박회사, 하역, 통관, 방제업, 금융회사등의 외국기업 및 전문인력 양성기관의 울산설치로 연관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자동차, 조선해양, 화학공업 등 세계 굴지의 기존 울산주류 산업을 고도화 하여 첨단 정밀화하면서 오일허브와 금융산업 등을 더해 나간다면 1980년대 말까지만해도 전자산업 50%, 정유·석유화학산업이 20%였던 싱가포르가 산업구조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좁은 국토 활용을 극대화하면서 이미 세계 3대 오일허브에 안착했듯 우리 울산의 미래도 밝게 빛 날 것이다. 일자리가 많아지고 물산이 풍부해지면 사람이 모여들 것이고 울산은 더없이 풍요로운 도시가 될 것이다.

먼저 생각하고 대비하면 머지않아 울산항이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으로 새로운 명성을 떨칠 풍요로운 울산시대가 우리 120만 시민과 함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두겸 울산 남구청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