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집단 트라우마
공포·분노·무력감 등 정서적 불안 두통·불면증 증세도
슬픔 인정하고 자신만의 힐링방식 찾아 감정 다스려야

▲ 지난 21일 오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많은 학생이 실종되고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시민이 학생들이 적어 놓은 무사귀환 기원 글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김모(42)씨는 요즘 불면에 시달린다. 세월호 사건 이후 일주일 째다. 불면 보다 더 괴로운 건, 세월호 상황이 자신의 아이에게 닥친 경우를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일.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 또다른 학부모 이모(57)씨는 신문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컥 울음이 터진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을 빗대어 직장 동료가 던진 가벼운 농담에 불같이 화를 냈다.

# 직장인 박모(46)씨는 TV뉴스를 보는 일이 고역이 됐다. 하룻밤 새 희생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체크를 하게 되고, 하루종일 스마트폰으로 사고기사만 검색한다. 스스로도 이같은 상황이 어이가 없고, 짜증만 난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무기력증에다 분노, 두통과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고 현장의 처참함을 지켜보던 시민들 중에는 집단적인 트라우마(trauma)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않다.

트라우마는 본래 외상(外傷)이라는 뜻의 의학용어다. 하지만 요즘은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충격 때문에 불안증상을 겪게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가장 흔한 증상은 예고도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물이 나는 것. 이는 40~50대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다. 피해자 가족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은 자신 또한 언제든지 똑같은 상황에 노출될 수 있음에 충격을 받았고, 응급체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이들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감과 우울증, 자괴감과 분노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울산 마더스병원 정신과 전문의 문석호 과장은 “이번 사고의 여파를 고려할 때, 집단적인 트라우마 증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국민감정을 컨드롤하는 사회적인 지원체계가 곧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며, 자신만의 힐링방식을 찾아 여유를 갖고 감정을 다스려 나가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니라 과거에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거나, 평소에 우울증을 앓은 전례가 있다면 그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있어야 한다.

울산시남구정신건강증진센터 이석진 센터장은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범불안장애 환자들이 센터를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있다”며 “특히 평소에 정신장애를 앓던 사람들은 일반인과 달리 사회적 집단 우울 모드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주변인의 관심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을 청소년 세대에게도 관심을 둬야한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향후 자신이 경험하게 될 외부활동이나 취미생활에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감을 갖거나 위험한 국가관이 형성되지 않도록 가정과 학교현장의 배려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도움말=고담의료재단 마더스병원

울산시남구정신건강증진센터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