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영 울산 동구청 문화체육과장

120년 나이 살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오른 해송 무더기. 그 속에 흐드러지게 핀 해무(海霧). 솔 내음 진동하고 사이사이 빼꼼이 비치는 햇살·해무가 간간이 차양(遮陽)을 쳐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멀리서 놀러온 소녀들의 합창소리가 자지러진다 ‘하하 호호’. 마치 아침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 같이 경쾌하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대암왕 공원 풍경이다.

옛날 어느 시선(詩仙)이 ‘아침에는 해무와 솔 내음에 취하고 점심에는 놀이객 노래소리에 취하고 저녁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에 취하고 파도에 구르는 몽돌 씻기는 소리에 취하는 곳이 바로 대왕암공원’이라고 했단다.

지난 6월14일 ‘백년의 빛과 천년 소리의 만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왕암 달빛문화제를 동구 일산동 대왕암공원에서 개최한 바 있다. 대왕암 해안산책로 3㎞를 달빛과 등대빛, 소원등 불빛에 의지해 음악과 파도소리에 취해 걸으면서 대왕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행사로 달빛을 배경으로 하는 공연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호응이 많았다. 이 날 약간 짙은 먹구름에 가려 밝은 달을 만끽하지는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삼삼오오 자녀를 데리고 온 참가자들은 전자바이올린 연주 등이 펼쳐진 빛 콘서트에 한껏 취했고, 어스름한 달빛과 희미한 가로등 아래 해안 달빛 걷기로 대왕암의 밤을 만끽하면서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행사를 마련한 관계자들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모든 행사가 끝나고 하나 둘 자리를 떠나면서 아쉬움이 점점 커져갔다. 가지런하던 의자 500여개는 비뚤비뚤 제 멋대로 흩어졌고, 공연 팜플렛들은 여기저기 바람에 나뒹굴었다. 1회용 비닐용기와 먹다 남은 커피가 뒤엉켜 흘러내리면서 곳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몇 달 동안 달빛문화제를 위해 유명 출연진을 섭외하고 소품준비와 공연장을 만들어 즐거움을 보여주는 공연의 끝 모습이 이런 건가하는 생각이 달빛과 함께 아쉬움으로 이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녀의 손을 잡고 온 우리 어른들의 아름답지 않은 부끄러운 손의 현장이었다.

이제 일산 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본격적인 여름철을 알렸다. 휴가철이 본격 시작되면 일산해수욕장은 또 많은 피서객들로 붐빌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찾고 싶은 해수욕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체험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에서는 이용객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문화시민으로서의 기본양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렵지 않다. 본인이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가고, 주변인들의 안전과 쾌적한 해수욕장을 위해 폭죽을 사용하지 않고, 음주와 흡연을 자제하면 된다.

또 공동이용 시설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피서객 안전을 위해 해수욕장 안전질서환경요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여 주면 된다.

올해 해수욕장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손보다 아름다운 손이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정해영 울산 동구청 문화체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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