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포개놓은 화첩 펼치니 세상만사 다 그 속에 있더라

CK갤러리서 9월13일까지 전시

▲ 28일 부터 CK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박상호 동양화 작가가 10년 간 작업해 온 화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규동기자
동양화가 박상호 작가의 개인전 ‘박상호 화첩 초대전’이 28일 오후 6시30분 CK갤러리에서 개막식을 갖고 시작됐다. 이번 전시는 CK갤러리가 마련하는 기획전으로, 오는 9월13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 풍경은 기본적인 동양화 전시의 틀을 깨고 있다. 전시작품은 사각의 액자 속에 들어있는 그림이 아니다. 모든 작품은 화첩 속에 들어있다. 화첩의 첫 면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있다. 병풍이 접히듯 고이 포개졌던 종이들이 아래로 흘러내려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1권의 화첩 속에는 많게는 25점, 적게는 13점의 그림이 각 장마다 그려져 있다. 그런 화첩이 모두 24권에 이른다.

전시된 화첩들은 박상호 작가가 10여년 간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그렸다. 첫 화첩은 지난 2003년 다녀 온 중국 태산의 풍경을 담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던 옥수수밭…. 1박2일을 달려 광활한 들녘 끝에서 태산과 마주쳤다. 그 때의 감흥을 그림으로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급한 마음에 화첩을 구입해 그 속에 풍경화 몇 점을 그린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로는 국내외 어느 곳으로 떠나더라도 빈 화첩을 꼭 챙기게 됐다. 비록 짧은 시간 안에 단순한 선과 면으로 표현되는 풍경이지만, 현지에서 직접 그린 그림은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진 이상의 감동과 흥취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어려웠던 곳은 베트남 하롱베이를 여행할 때였다. 일렁이는 파도 때문에 그가 탄 배가 계속 흔들렸다. 바다 위의 기암괴석도 파도를 따라 들쭉날쭉 그려졌다. 그렇다고 모든 페이지가 하나로 연결된 화첩의 특성상 그 부분만 찢어버릴 수도 없는 일. 박 작가는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흡족하지 않은 그림일지라도 여행기록의 연속성을 살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 그대로 남겨뒀다”고 말했다.

스위스 융프라우에서는 기압차 때문에 붓펜 속 먹물 튜브가 터져버린 일도 있었다. 영하의 날씨 속에 급하게 그려야하다 보니 앞뒤 잴 것도 없이 먹물을 손가락에 묻혀 그림을 완성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성당과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그릴 때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디테일한 선을 제대로 마감하지 못한 채 돌아섰다.

그의 화첩에는 이밖에도 터키 이스탄불, 이집트 카이로와 아스완, 홍콩과 마카오, 광저우와 기타큐슈 등 중국과 일본의 주요 관광지 등이 두루 들어있다. 마지막 화첩에는 지난 봄과 여름에 다녀 온 경주 오어산과 제주 성산일출봉의 풍경이 담겨있다.

화첩 작업에 많은 공을 들여 온 박 작가는 경상일보에 매일 연재되는 소설 ‘해제 박어둔’의 삽화작가로도 활동한다. 삽화 내용 중 태화루나 태화강 등의 울산지역 풍경이 들어가는 그림 또한 영락없이 화첩 속에 포함돼 있다.

박 작가는 오는 8월에 36년 간 잡았던 교편을 내려놓는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고향 보성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여는 게 꿈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의 화첩은 판매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향후 개관할 자신의 미술관으로 갖고 가기 이전에 울산시민들에게 먼저 보여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박상호 작가는 영남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총 11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대구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코리아아트페스티벌(세종문화회관), 찾아가는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