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의 지질사·분포도·표본 간추려야
日열도 이동·동해 형성 담은 강동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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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화석은 시간의 통조림이다. 강동의 조개류 화석은 일본열도의 이동과 동해의 형성을 알려주는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뜸 ‘동해가 생겨났다’는 말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평균 수심 2000m인 푸른 동해가 본래 있던 것이 아니고 생겨났다는 거냐? 그렇다. 2000만년 전에 생겨났다. 그 시기는 지구 나이 46억년에 비하면 짧지만 인류 기원이 300만년 전인데 비하면 아득한 시간이다.

동해가 생겨난 배경에 대해서는 한국 일본 러시아 여러 학자가 연구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동해는 본래 육지였다. 그 아래 맨틀(지각과 핵 사이 고온의 암석층)이 이동하면서 지각이 당겨져 벌어졌고 그 틈에 지금 우리가 태평양이라고 하는 대양의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울산 강동 산비탈에 나타나는 패류 화석이다. 강동화석은 우리 국민이 매우 사랑하는 저 동해의 형성과 긴밀한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한다면 강동화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50여년 전에 밝혔다. 그 뒤에도 꾸준히 연구논문이 나왔으나, 너무 심원한 얘기여서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강동주민들은 어릴 적부터 곳곳에서 화석을 봤다고 얘기한다. 그 소문을 듣고 현장을 찾은 화석애호가들도 수집흥미에 머무른 듯하다. 동해의 형성과 같은 깊고 아득한 얘기가 화석 조각에 들어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않았다.

그럼 학자들이 강동화석에 대해 밝혀둔 심원한 이야기를 간추려 보자. 강동 산하·달곡리 일대 골짜기나 깊이 판 공사장 마다 패류 화석이 나온다. 분포면적은 수백만평에 이른다. 화석은 주로 꼬막, 나사고둥, 굴이다. 이런 종은 모두 바다의 가장자리에 서식한다. 따라서 이 화석이 나오는 지역은 과거 바닷가임을 지시한다. 강동의 위쪽 양남이나 아래쪽 주전동에서는 이런 화석이 출현하지 않으므로 강동만의 특수성이라고 하겠다. 학자들은 그런 특성을 감안해 강동일대를 ‘강동분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분지는 푹 가라앉은 지대를 뜻한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크게 바꿔야 한다. 지금의 강동 앞이 바다이지만, 2000만년전에는 육지임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동해 역시 육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동을 왜 분지였다고 하는가? 학자들에 따르면 맨틀이 느리고 크게 움직이면서 땅덩이를 쪼개고 이동시켰다. 대륙에 붙어있던 일본 땅도 그때부터 서서히 남태평양쪽으로 밀려났다. 그때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이 강동 쪽이 벌어지고 태평양 해수가 밀려든 것이다. 당겨지고 찢어지는 거대 규모의 지각변동이 있을 때 같이 찢어진 것이 양산~후포간 양산단층, 울산~동래간 동래단층, 배냇골을 이루는 이천단층이다.

강동 산하리 일대에서 여러 개의 퇴적된 층을 볼수 있다. 모래가 쌓인 곳은 밝은 갈색 사암(砂岩) 층이고, 뻘이 쌓였던 층은 검은 이암(泥岩)층을 이룬다. 또 그 사이에는 자갈이 촘촘히 밖혀 역암(礫岩)층을 만들고 있다. 각종 패류 화석은 검은 이암층에 주로 밖혀있다. 뻘로 된 갯벌은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기 좋은 반면 모래나 자갈층에는 서식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강동지역 해발 20~60m 정도에서 발견되는 이 화석은 동해의 형성이란 어마어마한 사건을 지시한다. 우리가 이 화석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거기 있다. 2000만년전 동해형성때 분지를 이루며, 대양의 짠물이 들어온 곳이 울산 강동 뿐이 아니었다. 경북 영해와 함경북도 길주-명촌 지역이 비슷한 지질사건을 겪었다.

이제 우리는 강동화석이 울산 지질사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동해와 일본 땅의 형성까지 알려주는 시상화석으로 봐야한다. 그런 눈으로 강동화석이 지닌 지질사를 비롯 분포도와 표본을 간추려야 한다. 그런 뒤 경북이나 함경도에 앞서 좋은 장소를 찾아 전시관을 갖추면, 울산은 독보적인 지질관광 겸 현장학습장을 선점하게 된다.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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