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 바이올린/정경화, 오케스트라/빈필하모닉, 지휘/사이먼 래틀  

제작 : EMI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53)와 "영국의 신성" 사이먼 래틀(46)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77〉 음반이 EMI에서 출시됐다.  지난해 12월 빈 무지크페라인 잘에서 녹음한 실황음반인데, 정경화의 첫 브람스협주곡 녹음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 뿐만 아니라 함께 수록된 곡이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다단조 작품 67 운명〉이란 점이 더욱 특이하다.  아마 레코딩 역사상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한데 묶은 특이한 조합은 처음일 것이다.  연주자들의 면면만 본다면 세계 최고이다. 차세대 세계 음악계를 이끌어갈 신성으로 떠오른 래틀의 경우 최근 세계 최고의 악단이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기 상임지휘자로 임명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베를린 필과 쌍벽을 이루는 빈 필하모닉의 경우 베토벤과 브람스, 모차르트 등의 빈 고전파 레퍼토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향악단으로 평가받는다.  정경화는 냉정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래틀이나 빈 필이 차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명성에는 못미치지만 세계 유수의 콘서트홀 무대를 바쁘게 누비고 있는 정상급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  과거 정경화의 신들린 듯 열정적인 연주스타일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은 이 음반을 처음 듣는 순간, 실망할 지도 모른다.  웅장하고 격정적인 1악장 도입부에서 오케스트라의 주제 제시에 이어 등장하는 바이올린 솔로의 비감어린 상승 패시지는 강렬하게 치고 올라가는 맛이 부족한 대신 선의 움직임이 분명하면서도 유려하다. 템포는 전체적으로 약간 느린 편이다.  오보에의 서정적인 긴 서주부가 인상적인 2악장의 경우 정경화는 군더더기를 싹뺀 듯한 건조하고 간결한 음색으로 음표 하나하나를 명징하고 섬세하게 덧칠한다.  함께 실린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경우 래틀의 첫 베토벤 교향곡 녹음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정경화의 브람스 협주곡 녹음보다도 더 관심을 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경우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워낙 뛰어난 명연이 있어 당분간 그를 뛰어넘는 연주는 나오기 힘들 듯하지만 래틀의 이 녹음 역시 그의 오늘날 명성이 아무렇게나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템포와 프레이징의 절묘한 완급 조절, 핵심을 찌르는 악센트의 배치, 베토벤의 작곡 의도를 최대한 살린 듯한 고전적 양식미와 현대적 세련미의 조화는 과연 그가 제1급 지휘자란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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