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반시와 미나리의 고장, 이서국을 아는가. 소싸움으로도 이름난 경북 청도가 ‘저 서쪽 나라 이서국(伊西國)’이었지. 신라에 나라를 앗긴 당시엔 말싸움으로 유명했대. 이서 말과 사로(신라) 말이 싸우면 구경꾼도 패가 갈려 응원을 했지. 철기문화를 일찍 꽃피운 덕에 쇳물이 끓던 대장간이 많았고 갑옷과 투구, 무기가 남달라서 땅은 작았지만 기상이 드높은 나라였지.

2002년 어느 날, 불개들의 울음이 청도를 가득 덮었지. 이서국의 수호신인 불개 36마리가 2000년이라는 시간을 뚫고 나타나 봄날 오후를 흔든 게야. 조덕현의 현대미술 프로젝트 ‘이서국으로 들어가다’라는 가상 유물 발굴 이벤트였지. 그는 이서국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청도군 백곡마을 김일손의 일취정 앞마당을 파고 쇠로 만든 개 조각을 파묻었고, 영남대 박물관 조사단이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을 거쳐 그걸 파낸 것이야.

신라에 복속된 지 2세기가 넘은 서기 297년, 이서사람들은 독립전쟁을 벌였지. 이서사람들이 신라군사로 변장, 마차를 몰고 금성(경주)으로 들어갔어. ‘트로이의 목마’처럼 군사와 불개 떼를 마차에 싣고 금성의 한가운데로 쳐들어간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신라군사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지. 그때 홀연히 죽엽군(竹葉軍 : 댓잎을 귀에 꽂은 가야군사로 추정)이 나타나 이서군사를 물리친단다. 전세를 뒤집은 신라가 이서군사를 물리치고, 이서군에 남아 있던 이서 왕손의 씨를 말리는 토벌 작전을 펼치지. 이서사람들은 끝까지 맞서 싸웠지만 그날 이후 이서국은 삼국유사에 네 문장으로 남은, 아득한 역사가 되고 만 게야.

청도 비슬산에 봄이 오면 이서사람들의 피맺힌 한으로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지. 그 산자락 어디선가 불개 떼와 이서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해. 성곡저수지를 만들 때 나온 당시의 유물이 아니더라도 “청도”하고 불러보면 기운 생동하던 이서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져. 그리고 청도에 가면, 개그맨 전유성이 만든 철가방 극장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배달하고 있어. 이서국 청도에서 이왕 쇠로 된 극장을 만들었으니 거기에서 이서국의 독립 전쟁을 다룬 불같은 뮤지컬을 볼 날도 있겠지.

장창호 극작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