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억 서울산보람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그녀가 왔음을 진료실 안에서도 알 수 있는 3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있다. 그녀의 진단은 조현정동장애(분열정동장애)이고 증상이 완화되면 거의 정상에 가깝게 행동할 수도 있으나 증상이 악화되면 하느님과 교신을 할 수 있어서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어디에 있으니 빨리 나보고 연락을 해달라며 끊임없이 목이 쉰 채 말을 하곤 하였다. 환자는 그 나이에 맞지 않게 꾀죄죄하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보여준 신분증 속 사진의 그녀는 그녀가 병이 없었을 때는 어땠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환자는 병의 증상으로 말미암아 충동적으로 남자들을 만나고 병원에 올 때마다 애인이 바뀌었다. 환자의 모친은 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친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노쇠한 외할머니가 유일한 보호자이나 환자와의 갈등으로 이 분 역시 환자에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느 날은 환자를 도저히 입원시키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보호자에 의한 동의입원을 시켜야 하는데(환자는 병식이 없기 때문에 두 명의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 자격 있는 보호자 중 한 명인 아버지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환자를 어렵게 설득하여 자의로 입원을 시켰으나 병원비가 막막했다. 3일간 치료를 받은 환자는 퇴원을 선언했고, 정신보건법에 따라 퇴원시켰다.

그 3일간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 환자는 약간의 안정을 찾았다. 사실 3일 만에 퇴원을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병원비도 이유가 됐다. 생활이 곤궁하면 의료급여대상자가 되어 병원비가 전액 무료일 수 있지만, 그녀는 서류상에 경제력이 있는 아버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의료급여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대비하여 나라에서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만들어 두었지만, 이미 수 년 전에 써 버린 상황이라 이것도 도움이 안 되었다.

그녀가 우리 가족이라면 이 환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소위 말하는, ‘딸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 것’이 가족 마음이 아닐까.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가 소위 말하는 ‘환자의 의사에 반한 강제적’인 입원치료인데, 그것의 법적절차가 정신보건법 24조에 기술된 ‘보호 의무자에 의한 입원’이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신보건법의 폐지를 주장한다. 물론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환자를 강제로 구금하는 악덕 병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을 송두리째 폐기해 버리자는 주장은 마치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짓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법과 제도의 허술함 속에 한 젊은 여자 환자의 삶이 송두리째 거덜 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상억 서울산보람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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