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이 지난 지 얼마 안된다. 말복을 앞두고 있는 요즘이 여름의 한가운데가 아닐까 싶다. 정말 무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온 몸이 나른해지며 자연히 모든 의욕이 없어진다. 생리적인 식욕까지 떨어지는 마당에 일할 의욕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모두들 생기를 잃어버린 것 같다. 아이의 자연관찰 숙제를 위해 봄에 씨앗을 뿌렸던 긴 플라스틱 화분에는 키가 장대만큼씩 자란 봉숭아가 시들하다. 기어이 시들고 말려나. 빨알간 꽃잎을 따다가 백반을 섞어 찧어서 아이들의 손톱에 고운 물을 들여주고 싶은 소망은 그만 접어야 할까보다.  사람들은 모두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가버렸다. 여름식물인 봉숭아도 지쳐버린 이 더위를 피해 어디서든 생기를 찾아오려고 우리들은 휴가를 떠나는 것일게다. 파도치는 바다를 보면서 조급하고 좁아진 마음에 여유로움을 채우고, 푸른 기상으로 숲을 이룬 나무들을 보면서 긴장된 생활 속에 어느 사이 사라져 버린 젊은 날의 용기와 꿈을 생각해보기도 할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재충전을 위한 휴가는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의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비슷한 장소에 몰려서야 진정한 휴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싶다. 휴가라고 떠났는데 거기서조차 사람들과 아웅다웅한다면. 휴가관습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동안에도 여전한 천식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휴가가 따로 없다. 그 분들 중에서는 서생 바닷가에서 오시는 분도 있고 두동 산골짜기 마을에서 오시는 분도 있다. 그 중에 한분인 김영진 할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바닷바람에 그을러서 유난히 검은 얼굴을 더 검게 보이게 하는 검정뿔테안경은 다리쪽에 반창고가 칭칭 감겨 있다.  아마도 오래전에 부러진 모양이다. 반창고도 손때가 묻어 새까맣다. 그래도 얼굴은언제나 웃음이 가득하다. 평생을 어부로 사셨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느새 바다를 닮아가고 있는 듯, 넉넉하고 여유롭다.  휴가철이면 민박을 하는 할아버지의 집에는 해마다 아들네가 온다. 민박이 많아 일손이 부족한 부모를 도우러 오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 누릴 수 있는 휴식시간을 부모에게 내주는 이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처럼 편안한 시설이 되어 있는 휴양지로 가서 쉬지 않고 언제나 찾아오는 아들부부에게 할아버지는 무척 미안해한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는 휴가철이 되기도 전인 지난달부터 아들을 기다리시는 것같다. 어쩌면 너무 짧고 부산해서 아쉬운 명절 연휴보다 며칠동안 함께하는 이 휴가철이 더 기다려지는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넉넉한 웃음은 부모의 그런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여름 휴가를 떠난 모든 이들이 깊은 계곡이나 넓은 바다 어디서든 생기를 되찾고, 다시 열심히 일할 의욕을 얻어 오기를 바라는 한편으로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도 들녘에서, 바닷가에서 평생 휴가를 모르는 우리 부모들이 구슬땀을흘리고 있다는 것을 한번쯤 되새겨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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