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적 특색 무시한 도시재생
차별성 없는 도시 획일화 부작용
시민 삶의 흔적 보존하는 노력 필요

▲ 이규백 울산대학교 실내공간디자인전공 교수

개발시대의 산물이었던 청계고가도로가 청계천으로 재탄생한 것은 그 사업결과의 성공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관심을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과 물리적 환경의 디자인에 돌리게 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 사업을 계기로 ‘도시를 디자인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고,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디자인이 도시행정과 시민들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시디자인이란 도시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건축물, 공공 공간 그리고 환경시설물들을 디자인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디자인은 디자인시범거리, 간판개선, 고향의 강 정비와 같은 물리적 환경의 개선사업에서부터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과 같은 시민들의 삶의 본질적 영역으로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도시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도시디자인 사업의 결과에 대한 평가들이 조금씩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세월이 주는 필연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디자인은 도시발달의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계획되고 적용되어온 선진국들과는 달리 압축적 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이질화된 도시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었기에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도시디자인이 지나온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용 후 평가 등을 통한 개선 방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사용 후 평가는 디자인이 완료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원래의 디자인 목표와 실제적 사용경험이 얼마나 상이한가를 평가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함으로써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디자인은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장소에 적용되었기에 더욱 더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

이미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들 역시 적지 않다. 품격 있는 도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디자인 사업들은 도시성장의 역사와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 다른 도시들의 경관을 획일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대부분의 디자인 시범거리, 간판개선사업은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그 도시만의 지역성과 장소성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도시디자인 시범사업들은 또 다른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 도시디자인의 성공적인 적용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지만 역설적으로 개선된 환경으로 인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업자들을 타 지역으로 밀어내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디자인 되어진 마을, 이야기를 가진 골목길들은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평온했던 주민들의 거주환경이 황폐화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도시디자인이 지향하는 목표가 아님은 분명하다.

최근의 정부정책은 대규모 개발 사업의 한계점들을 인식하고 도시재생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묻어버리고 있었던 지난 역사와 삶의 현상들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도시재생은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 또한 도시디자인이 걸어온 전철을 밟을 것 같아 염려된다. 도시의 역사는 결국 시간의 이야기이며 켜켜이 쌓여 있는 삶의 단층들이다. 따라서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은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듯 세밀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전제로 하여야만 한다. 도시의 재생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그 골목을 지켜온 사람들, 그 장소의 이야기들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묻혀 버린 과거의 역사와 유물과 같은 흔적을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자를 하면서 그 이면에서는 현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도시의 흔적들을 지우거나 어설픈 덧칠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디자인이든 도시재생이든 우리의 삶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전시행정의 표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외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하고 과잉 디자인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늘 깨어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는지 진솔하고 엄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실내공간디자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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