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이 역량발휘 가능할 때까지
공공부문이 확고하게 개발 주도해야
석유공사부터 여건 조성하는 노력을

▲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흔히 석유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얘기할 때, ‘신자원민족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거론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자원민족주의가 새로운 국제정치의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지향의 산물이었다면, 신자원민족주의는 여기에 ‘실용’의 의미가 강해져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축적하기 위해 자원을 무기화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신자원민족주의 속에서 산유국과 소비국의 국영기업, 선진국 메이저, 수많은 독립계 석유기업간 경쟁은 보다 치열해 지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이기기 위한 싸움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영 석유기업, 즉 NOC(National oil company)가 타국 NOC와 공동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급증하고 있는 것 역시 신자원민족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석유환경이 개별기업, 시장자율에 의존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짐에 따라 석유확보의 주도권이 공공부문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필자 역시 한국의 국영석유기업을 이끌면서 취임 이후 약 3년 동안 말레이시아, 멕시코, 중국 등의 다양한 산유국의 NOC 수장들을 만난 바 있는데, 이들 역시 NOC끼리는 굉장히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세계 석유개발 시장은 NOC간의 멤버스 비즈니스(Members Business)가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국영석유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상업적인 이익보다는 국가간의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신뢰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NOC들은 석유개발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자국의 석유산업 발전과 신 성장 동력 창출의 핵심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석유안보가 매우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석유산업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석유의존도가 무려 42%에 육박하며, 석유확보 시스템이 GDP 기준 경쟁국가들 중 매우 열악한 수준임에도 말이다.

가까운 나라 중국은 2013년 3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취임한 이래 국영석유사의 육성을 에너지 전략 목표로 추진하며 이미 성공을 입증하였고, 일본 정부는 2005년부터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며 공격적인 자주개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INPEX 또한 정부가 21%의 황금주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NOC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석유개발사업을 민간에서 주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민간석유개발사업자는 어려워진 경영환경으로 그나마 몇 남지도 않았지만, 자원 확보 뿐 아니라 장기적 성장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기술력 획득에도 실패하고 있다. 단기적인 수익창출이 우선인 민간기업은 투자 여력이 있고 양호한 글로벌 석유시황에서만 참여 사업을 확대하는 투자 성향상, 전문 역량과 기술을 축적하는 일관된 석유개발 전략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글로벌 트렌드와 우리나라의 사정을 감안하며 민간기업의 독자 역량 발휘가 가능할 때까지 공공부문이 확고하게 석유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영기업과 민간 자본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현 상황에 적합한 최적의 투자모델을 마련하고, 석유개발사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서 공사부터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따라 석유라는 자원을 확보하는데 있어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과 돈,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공기업 주도하에 국가의 석유산업 전체 역량을 높여 NOC간의 경쟁과 협력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결코 예외의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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