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환 사회부

울산경찰이 ‘식겁’을 하고 있다. 최근 동구에서 발생한 ‘모텔살인 사건’의 부실한 초동수사로 전국적 공분의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 재수사를 청원하는 운동이 시작됐고, 3일만에 4000여명이 동참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모텔살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혼 후 혼자 자녀를 키우는 이모(43)씨는 3년째 만난 애인 전모(41)씨의 강요에 못 이겨 모텔로 끌려갔다. 약 6시간 뒤 이씨는 온몸에 멍이 들고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대원들은 이씨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이씨는 장간막이 파열돼 내부 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울산지법은 증거 불충분, 도주 및 증거 인멸 염려 없음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의심스러울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하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이다. 다시말해 경찰이 준비한 기초수사 자료와 증거가 전씨를 구속시키기에는 부족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건 뒷이야기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인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궁금한 이야기Y는 이씨의 휴대전화를 복원했다. 복원한 전화에는 수상한 숫자와 기호 문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위치추적 앱의 흔적이었다. 전씨가 위치추적 앱을 통해 이씨를 따라다니며 폭행한 증거라고 방송은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또 방송은 식당에서 이씨가 전씨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이 담긴 CCTV을 확보해 보여줬다. 그러나 경찰은 초동수사 당시에 식당주인과 연락이 안된다는 이유로 CCTV를 확보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현재까지 나타난 가장 중요한 증거들을 놓친 셈이다. 궁금한 이야기Y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살인사건보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 경찰이 더 무섭다’ ‘경찰의 수사력은 방송국만도 못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여론이 나빠지자, 뒤늦게 경찰은 “식당 CCTV 확보와 피해자 휴대전화 분석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등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추가 증거를 확보해 이씨를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 결국 구속됐다.

비단 이 사건 뿐 아니라 일명 ‘낙지살인 사건’ ‘대구 황산테러’ 등 많은 사건들이 초동수사만 제때,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유무죄는 물론 범죄의 경중도 정확히 가려질 가능성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변사사건 현장에 나가는 경찰은 항상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증거조사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도, 억울한 피고인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최창환 사회부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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