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복 사회부 부장

지난달 고리1호기 폐로 결정을 계기로 정부가 1500억원을 투입해 원전해체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는 한편 올 하반기에는 범정부 차원의 ‘원전해체산업 육성대책’을 제시하기로 하면서 원전해체연구센터 건립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치신청을 한 울산·부산을 비롯한 전국 8개 지자체들은 입지선정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래과학부가 입지선정 시기를 임의로 늦춰버렸다. 입지선정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이 없어졌다. 유치 희망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업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막연히 처다보기만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미래과학부는 원전해체연구센터 건립 추진과 관련해 당초 지난해 12월께 예비타당성 조사 중간용역보고회를 개최하면서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이후 미래부가 생산현장에서의 실증화 계획을 도출하지 못한데다 산업부 등과의 이견으로 비용대비 편익(B/C)이 제대로 도출되지 않아 타당성용역 조사 진행은 지지부진을 거듭했다. 올해 3월 중간보고회를 개최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6월로 미뤘으며 이제는 기약마저 없어졌다.

연말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뒤 입지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으로 변했다. 고리1호기 폐로가 결정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래부가 지자체 입장은 외면하고 자기 살길만 찾는 꼴로 변한 것이다. 국회에서 중간보고회 개최와 동시에 입지를 선정해 그 부지에 맞는 최종 용역을 도출하겠다던 입장마저 번복했다. 자기 부처의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의도다.

원전에 둘러쌓여 있으면서 혜택은 거의 없는 울산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원전해체연구센터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심포지엄도 열고 컨소시엄도 구성했다. UNIST와 함께 미국 견학도 다녀오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부산이나 경북도에 비해서는 다소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위치적인 여건과 산업기술 보유를 강점으로 내세우면서 4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는 성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부산과 공동유치를 합의하는 성과에 이르면서 울산시민들의 기대는 한껏 고조됐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사생결단식으로 경쟁을 벌이도록 해놓고 이제와서 자기 살길만 찾겠다는 식으로 변해버린 미래부의 태도다. 던지기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울산시를 비롯한 8개 지자체의 행정력 낭비 규모는 추산하기도 어렵다. 행정력 낭비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혼선을 빚고 있는데도 사과는 커녕 향후 로드맵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사업추진 일정이 바뀌었으면 정확한 사유와 함께 다음 일정을 밝히는 것이 수순이다.

이견을 보이던 미래부와 산자부는 고리1호기 폐로 이후에도 특별한 실무협의 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시는 입지선정 시기가 상당기간 미뤄졌지만 일단 부산시와 공동유치라는 큰 틀에 따라 실무자협의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공동유치에 필요한 실무 차원에서 단일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유치신청을 한 8개 지차제 대부분이 달리 추진할 것이 없는 울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석복 사회부 부장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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