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고 그럴듯하게 이름 붙인 5월이 다 가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가정의 달을 정해야 할만큼 가정의 와해가 심각한 것 같다. 최근 발표된 이혼율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인습이나 윤리의식은 물 건너간지 이미 오래다. 나는 그 까닭을 남자들에게서 찾고 싶다. 남자가 남자답지 못해서 가정이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사회는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남자의 힘이 크지 않은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집안 얘기를 해야겠다. 남의 얘기로 허물 삼고 싶지도 않거니와, 요즘은 이런 경우가 허다해서 별로 창피한 일도 아닌 것같다.  3년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온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손위 동서는 당당하게선언했다. "어머님 제사는 절대로 모실 수 없어요. 재산이라도 주면 모를까." 4년 동안 시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던 동서가 그 말을 했을 때 가족들은 너무 놀랐다. 나는아주버님이 노해서 동서를 때릴까봐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아주버님은 입을 꼭 다물고 동생들 눈치만 보는 거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마침내 셋째아들인 남편이 나섰다. "부모님 제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재산은 필요없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나는 너무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란 건 아주버님의 말씀이었다. "제수씨, 제사 모실 수 있어요?" 공은 나에게로 넘어왔다. "집안의 결정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나는 공을 받아치지 않고 품에 안았다. 그래서 너무나 황송하게도 시부모님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동서가 제사를 거부한 이유는 단 한가지다. 부모가 뭘 해준 게 있다고 내가 제사를모시겠느냐, 재산이라도 주면 마지못해 지내겠지만". 문제는 그런 동서한테 말 한 마디 못하고 동생한테 냉큼 제사를 넘겨버린 형의 무능함이었다. 무릇 집안의 질서는맏이가 잡아야 하고 가정의 질서는 남자가 지켜나가야 한다. 맏이가 맏이 노릇을 못하고, 남자가 남자 노릇을 못하니까 여자들이 기어오르는 것이다. 아니, 아예 깔아뭉개는 것이다.  남자 노릇이 완력으로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스스로 가정의 위계질서를 지키는 모범을 보이고 평소에 부모님을 존경한다면 아내가 감히 어떻게 남편과 시댁을 무시하겠는가? 명절을 지내고 나서 주부들이 모여 앉아 하는 얘길 들어보면, 대개 집안의 위계질서에 얽힌 갈등이 많다.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 제대로 못하고, 형이 형노릇 제대로 못하면 온 집안이 시끄럽다.  흔한 말로 여자는 결혼 잘못하면 저 혼자 신세 망치지만, 남자는 결혼 잘못하면 3대를 망친다고 한다. 부모형제 의리 끊고, 제 신세 망치고, 자식농사 망친다.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흔하겠는가? 살아가면서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가 자칫 가정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고부갈등이나 재산문제 등 형제들끼리 이해관계에 얽힐 때도 많다. 이때, 남자들이 교통정리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어쩐 일인지 여자한테 휘둘리는 남자들이 많아서 집안대소사의 결정권을 여자들이 쥐고 있는 듯하다. 부인들에게 기죽어 사는 건지, 아니면 선진국처럼 여성에 대한 대우를 해주는 건지 의문스럽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어린이, 노인, 여자 순서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남자 값이 가장 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어느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일까? 선진국 문화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무늬만 선진국"은 달갑지 않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에 대한 배려로 그들을 대우하는 것과, 남자들이 무능하고 약해져서 상대적으로 여자가 강해지는 것은 다르다.  남자들이여, 부디 여자를 섬기느라 애쓰지 말고 보다 강하고 당당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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