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에 잡힌 일제시대 관문성의 모습들
11월부터 진행되는 관문성 기초조사에 도움될 것으로 기대

 

울산박물관이 1910~1930년대에 촬영된 관문성(關門城) 사진 28점을 공개했다. 울산시가 오는 11월부터 진행할 예정인 관문성 기초조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관문성’은 울산(북구~울주군)과 경주(외동읍 모화리)의 경계에 있는 성으로, 지난 1963년 1월21일 국가지정 사적 제48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공개된 관문성 사진은 울산박물관에서 유물사진을 담당하는 이선종 주무관이 찾아냈다. 그는 울산지역의 근대사료 연구자들, 특히 울산대학교 강영환·한삼건 교수, 울산과학대학교 이철영·이창업 교수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울산 관련 사진자료를 발굴, 연구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울산동헌 남문인 가학루(駕鶴樓) 사진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주무관은 “울산의 근현대 사진 아카이브를 수집·조사하면서 관문성 사진을 찾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건판 3만여 점 중에 28점을 확인했다”며 “사진은 1914년, 1920년과 1930년대까지 세 차례 정도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분류가 울산이 아닌 경주로 되어있어 그동안 소개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관문성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卷第八 新羅本紀 第八)에는 “성덕왕 21년(722년) 모벌군(毛伐郡)에 성을 쌓아 일본의 침입로를 막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모벌군은 곧 모화군(毛火郡)이며, 이때가 관문성을 축조한 연대로 보인다. 원래 이름은 ‘모벌군성, 모벌관문’이었으나, 조선시대에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촬영된 관문성 사진 28점이 공개됐다. 울산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건판 3만여 점 중 28점을 확인한 것이다.
 

<삼국유사>(卷第二 紀異第二 孝成王)에는 “효성왕(722년) 개원(開元, 당 현종 연호) 10년 임술(壬戌) 10월에 처음으로 모화군에 관문을 쌓았다. 지금의 모화촌으로 경주 동남지역에 속하니, 곧 일본을 방어하는 요새였다. 둘레는 6792보 5자이고, 동원된 역부는 3만 9262명이며, 장원(掌員, 감독관)은 원진(元眞) 각간(角干)이었다”라고 전하며 당시로서는 대규모 공사였음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신라 왕성이었던 경주 반월성의 둘레가 1023보이므로 관문성 둘레가 반월성보다 약 6배에 달한다. 신라의 만리장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주 남산성보다 훨씬 발달된 성 쌓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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