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농사가 대풍년이면 배추밭을 갈아엎는 일이 생긴다. 돼지가 풍년이어도 이같은 수난을 당한다. 그런데 이번엔 수입 소가 들어오면서 축산업자들이 띄를 둘러 메고 연일 시위를 벌인다. 국내 축산업자들의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풍요가 비극적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은 시장예측을 못해 공급과 수요의 시장 논리가 무시당한 결과이다. 오늘의 범람하는 콩쿠르을 보면서 재앙을 느낀다. 선의로시작된 콩쿠르가 옥석을 가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콩쿠르의 원래 기능을 벗어나 돈벌이 수단이 되어 잡초처럼 강한 번식력을 가진데는 교수사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교수, 강사들이 심사위원 위촉을 권위로 생각하고 또 용돈 몇 푼도 싫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 꿈나무들을 가린다는 대의명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콩쿠르이 주최측의 약팍한 상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준 소극적 방조가 "콩쿠르 공화국"을 건설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콩쿠르로 시작해 콩쿠르가 끝날 때면 그의 예술인생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만다는데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때에 콩 볶듯 볶아대 기진맥진할뿐만 아니라 인문적 토양이나 상상력을 갖지 못해 기계 음만 토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콩쿠르란 잣대로 획일화될 때 예술의 개성과 다양성은 숨쉴 수가 없다. 한국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콩쿠르를 숭상하는 나라로 꼽힌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콩쿠르에 주어진 입학 특전이나 군 면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70∼80대 콩쿠르를 주도했던 권위 있는 언론사들은 마지못해 형식적인 콩쿠르를 하고있다. 이제 콩쿠르 문제를 사회 전면에 부각해 정리할 때가 되었다.  결론으로 이제 콩쿠르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것도 과감하고 신속하게 콩쿠르를 없애야 한다.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과 동시에 캠페인을 해 수준 미달의 콩쿠르은 갈아엎어야 한다. 권위 있는 콩쿠르을 만들기 위해서 전형료도 대폭 낮추고 콩쿠르가장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비 예술가를 지원하는 등의 실질 지원에 높은 평가를 주어야 한다. 콩쿠르 인준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외국의 명성 있는 콩쿠르 입상자만으로도 넘쳐 나기 때문에 콩쿠르에 보다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문연주가 육성을 위해 무대를 개발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을 가꾸지 않고 콩쿠르가 좋다고 양산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는 결국 우리 모두를 어렵게 하는 원인일 뿐이다.  죽여야 하는 콩쿠르와 살려야 하는 콩쿠르를 가려야 한다. 바람직하기는 우선 잡지, 신문들이 콩쿠르을 하지 않고 객관적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TV 중독에서 벗어나듯 콩쿠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성 중심의 사회적 관점을 부활시켜야 한다. 경쟁을 통한 동기 유발이 어디까지 적정한가에 균형감을 체득하는 성숙한 사회가 언제쯤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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