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계추 장소로 인기있던 목도
상록수림 보호 위해 시민들 출입 막아
해설사 동반한 제한적 출입 고려해야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울산사람들은 계모임을 많이 한다. 계모임은 울산말로 ‘계중’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네명만 모이면 계중 만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1960~70년대 계중에서는 일년에 한두번씩 나들이했다. 날씨 좋은 봄·가을에 음식을 준비해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돌아오는 행사다. 이를 울산에선 ‘계추’라고 한다. 계추 장소로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앞바다에 떠 있는 ‘춘도섬’이다. 상록활엽수림이 천연기념물 제 65호로 지정돼 있는 섬으로 춘도(椿島), 목도(目島), 죽도(竹島) 등으로 불렸으나 당시 울산사람들에게는 ‘춘도섬’이 입에 익어 있었다. 2012년 울산시가 목도상록수림공원이라고 통일했다.

필자의 고향에서는 ‘계추’가 아닌 ‘해추’라고 했다. 해치, 회추, 회치 등 다양하게 불렸다. ‘해추’ 날짜가 정해지면 온 마을이 약간 들뜬 분위기였다. 엄마들은 옷고름 대신 브로치를 다는, 당시 유행하던 새 한복도 장만했다. 수육과 잡채, 떡, 과일, 식해, 단술 등 음식 장만은 집집마다 나누었다. 장구도 준비했다. 적당한 숲속을 찾아 식사를 한 뒤 장구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그야말로 있는 힘껏 놀았다. 그렇게 해추를 한번 다녀오면 엄마들은 한결같이 며칠 동안 목이 쉬어 있곤 했다. 말이 안 나와 고생스러워 하면서도 묵은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 듯 밝아졌다.

이젠 모두 옛날 이야기다. 계추도, 해추도 사라졌다. 퇴폐문화라 해서 정부가 강제로 없앴다. 더불어 목도상록수림공원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됐다. 가난에 쪼들리며 죽어라 일만 했던 우리 어머니·아버지들에게 그나마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인 그 섬이 1992년부터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20년간 출입을 통제했다가 다시 10년을 연장했다. 2021년 12월31일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을 보호한다는 것이 이유다. 학술조사나 환경정화 활동 등의 목적으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목도상록수림공원은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300m 거리에 있다. 면적이 1만5074㎡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울산의 자연과 한반도의 난·온대 기후를 대표한다’는 상록수림이 우거져 있다. 동백나무 700여그루, 해송 400여그루, 후박나무 200여그루, 사철나무, 칡나무, 팽나무, 자귀나무, 구기자, 멍석딸기 등 다양한 상록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초봄엔 송이째 뚝뚝 떨어져 땅에서 다시 피어난 붉은 동백꽃이 매혹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23년째 들어갈 수 없는, 그 섬에 가고 싶다. 활엽상록수림이 빼곡히 자라는 무인도, 상상만으로도 신선하고 신비롭다. 섬을 노래하는 이생진 시인은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고, 섬에 오는 이유를 말했다. 동백이 피는 봄날이면 더 좋겠지만 날씨 좋은 가을날도 나쁘지 않다. 하얀 운동화 신고 숲속길을 따라 섬 한바퀴 휘 돌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 질 것 같다. 천연기념물이 있다고 해서 아예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할 이유는 없다. 그것도 30년씩이나. 하루 몇명씩 제한적으로 신청을 받아서 해설사를 동반해서 들어가게 하면 될 일이다.

조그만 조각배를 타고 들어가는 목도 답사, 힐링을 주제로 한 관광상품으로도 손색없다. 멀리 처용암도 있다. 혹여 주변이 온통 공단이라고 타박을 한다면? 울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힐링과 산업관광의 묘한 이중주, 시쳇말로 ‘득템’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그 옛날 계추를 갔던 세대들에게 늦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되돌려 주고 싶다. 옛날처럼 먹고 마시고 노는 계추를 할 수는 없겠지만, 죽어라 고생했던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길이 아닐까. 그 섬에 이젠 가야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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