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위기관리시스템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일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터뷰는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한 공무원의 말이었다. 그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은 공무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본인의 집까지 왔다는 것은 ‘이미 늦은 상황’이라는 것. 개개인이 직접 판단해 대피장소로 가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적이고 실제와 같은 대피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과 훈련은 울산시와 각 구·군청, 소방당국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것을 뜻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대피장소로 어디를 가야하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어느 경로로 대피하는지’ ‘안전장비를 어떤 것을 착용해야 하는지’ ‘몇 분안에 집을 떠나야 하는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자가용을 이용할 것인지’ 등 여러가지 선택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것들은 평상시에는 판단을 내리기 쉽지만 갑자기 재해가 엄습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인명피해는 늘어나고 한 대피장소에 사람이 몰릴 수 있으며 안전장비가 모자라 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피현장에서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실제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을 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한 곳에 모여있을 가능성이 적어지면서 ‘회사에 있는 아버지’ ‘지하상가에 쇼핑하러 간 어머니’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 등 각각의 장소에서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이 교육되고 있다. 또 대중교통이 모두 끊긴 새벽에 재해가 발생했을 때, 홀로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두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대피훈련이 생각난 이유는 지난 16일 이수화학 울산공장에서 1000ℓ나 되는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라는 일본 안전담당자의 말을 새겨야 할 때다.

김은정 사회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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