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폐지·유예 논란에 국민은 없고
이해당사자 간의 밥그릇 싸움만 치열
사시 존치, 공공을 위한 쪽으로 풀길

▲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지난해 말 불거진 사법시험 폐지 유예 논란은 연간 약 330만명의 국민들이 응시하는 기술사, 기사 등 479개 기술자격과 변리사, 세무사 등 37개 전문자격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가자격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해 12월3일 법무부는 2017년 폐지가 예정되어 있던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4년간 유예한다는 입장을 돌연히 발표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변리사 시험을 주관하듯이 법무부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졸업생들이 응시하는 변호사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이다.

법무부 발표 이후 전국 25개 로스쿨 재학생들은 학사일정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서서 집단 자퇴원을 제출하고 금년 1월 초 실시된 변호사시험을 집단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금수저’를 갖고 태어난 부유층, 특권층만이 로스쿨에 다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법시험 존치를 일찍부터 주장해 왔던 사법시험 준비생들도 거리로 나서서 사법시험을 영구히 존치해야 한다고 외쳤다. 대법원은 국회, 대법원,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법무부는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국회는 법안 사항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라고 대법원 제안을 일축했다.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유예입장을 번복하면서 올해 초 치러진 변호사 시험은 예년과 같은 결시율이 유지됐다. 일단 사법시험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으나 언제든지 폭발적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로스쿨 교수, 로스쿨 유치 경쟁에서 실패한 법과대학 교수들까지 가세한 사법시험 폐지 유예 논란을 보면서 법률서비스의 고객인 국민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판검사 및 변호사가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인력의 수요처와 공급처간의 입장이 상충되는 것이 사법시험 폐지 논란의 핵심이다. 법무부 입장은 우수 인력을 검사로 임용하는데 기존의 사법시험이 유리하다는데 그간의 경험을 반영하는 듯하고, 대법원은 로스쿨제도를 통해서도 판사인력 양성 및 법원 운영에 큰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많은 투자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비용 측면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로스쿨 입장에서는 졸업생의 취업난을 가중시키고 궁극적으로 존폐여부까지 갈 수 있는 사법시험 존치를 반대할 수밖에 없고, 로스쿨 유치에는 실패하였으나 사법시험이 유지되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법과대학들도 사법시험 유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난 해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 자격시험 운영과 관련된 민원인들의 항의 시위로 근로복지공단, 한국석유공사 등 인접 공공기관에 폐를 끼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격시험과 관련된 훈련기관이나 학원 등에서 시험문제 출제의 난이도 등을 문제 삼아 공단 앞에서 집회를 하기 때문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트는 확성기는 법이 정한 기준이내이지만 공단 건물이 위에 위치해서 업무를 하는데 고충이 많다. 특정 자격시험에 합격 보장을 내세우며 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합격률이 떨어지면 학원이나 양성기관의 난감한 입장은 로스쿨이나 법과대학 교수들이 더욱 잘 이해할 것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학벌을 대체하는 능력중심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자격의 현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반영하도록 국가기술자격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있으며 기존의 검정형 자격 외에 과정평가형 자격을 도입하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 여부도 금수저, 흙수저 타령 보다는 국민에게 저렴하고 효율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방향에서 풀어야 한다.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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