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실험 후 국제정세, 대북제재로 가닥
핵심은 중국이지만 나름의 셈법 복잡해
美-中 헤게모니 전쟁 대비 정신 차려야

▲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일전에 외교부 최고위 인사들과 저녁자리를 한 적이 있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긴박한 때여서인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대북(對北) 분석과 대책이 중심이 됐다.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자칫 전쟁이 터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전쟁 경로는 여러 갈래일 수 있다. 휴전선 일대에 확성기를 재가동한 데 대한 북한의 도발, 미국의 북한 때리기 등이 진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미국은 여러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시뮬레이션 결과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시뮬레이션 시점은 정확치 않으나 대략적인 분석 결과는 1주일이면 북한 전력을 거의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쪽인 것 같다. 우리 측 피해도 막대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서울은 물적 피해는 물론이고 인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 시일이 조금 더 흐른 지금의 국제 정세는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유엔을 통한 공동 제재,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개별적 제재 등이 대북 카드다.

유엔에선 ‘쿠바식 봉쇄’ 카드도 거론되고 있다. 지금은 미국과 쿠바 간 국교정상화가 됐지만 그 이전의 쿠바는 경제적으로는 괴멸 상태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0여년 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 총회 취재차 지금은 고인이 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수행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때 보고 느낀 점은 쿠바는 제대로 있는 게 없는 최빈국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북 제재의 핵심은 중국이다. 북한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셈법은 복잡하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크지만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데 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리 실패에 대한 미국의 비난에 맞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산술적 계산이 깔려 있다. 결국 중국은 제한적 대북 제재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국제 역학에서 변수는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헤게모니 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전쟁은 총칼을 쥐고 했다면 현대전의 ‘빅 매치’는 총칼 대신 경제다. 지금은 유가 폭락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됐지만 폭락 초기 국제외교·경제계에선 “기존 국제질서에 반기를 드는 러시아를 손보기 위한 미국의 조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유가 급락 사태를 맞아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 직면해 있다.

중국도 최근 들어 상당한 경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상장률이 25년만의 최저치인 6.9%로 내려앉으면서 바오치(保七·7%대 성장유지) 시대를 마감한 것을 놓고 중국경제 회의론이 광범위하게 번져가고 있다. 실물경기 둔화와 함께 중국 증시 급락 등 금융 불안에 따른 급격한 자본유출이 금융시스템의 대혼란으로 이어질 경우 중국 경제는 상당기간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일각에선 중국의 대국굴기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자리를 같이 한 경제전문가는 “미국의 ‘중국 손보기’가 중국의 경제 위기를 가속화하는 중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대중(對中) 경제공격이 가시화될 경우 한반도 정세의 가변성 확대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이 불가피하다. 우리로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엄중한 시기가 곁에 와 있는 셈이다.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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