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운전 통한 장거리 귀성길
시간 걸리는 대신 쏠쏠한 재미 느껴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한 오붓한 시간

▲ 김혜준 (사)함께하는아버지들 대표

“어떤 사람을 가장 무서워하십니까?”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도로 한 가운데에서 만나는 ‘뻥튀기 파는 아저씨’이다. 이 양반과의 조우는 상당한 교통체증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누구인들 꽉 막힌 도로를 좋아하랴마는 나는 특히나 차 막히는 운전을 질색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격렬한 졸음 때문이다. 내려오는 눈꺼풀은 천하장사도 못 들어 올린다고 하니, 운전 중에 찾아오는 졸음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연휴기간 특히 명절을 맞아 고향 가는 길에 차를 몰고 갈 생각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차를 몰고 고향을 찾은 지가 십년은 족히 넘는다.

그런데 지난 추석에는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차를 가져가게 되었다. 모처럼 가족들을 오롯이 태우고 내려가 보니, 쏠쏠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저 나쁘지 않은 수준, 그 이상이었다. 딸은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예전처럼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며 뒷자리에서 뒹굴었다. 어릴 적엔 두 발이 허공에서만 동동거리더니 지금은 자동차 천장에 닿고도 한참이 남는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모르긴 해도 소위 ‘아빠 미소’라는 것도 그 때 내 얼굴에서 발견되지 않았을까? 자동차 천장을 휘젓고 다니는 딸아이의 맨발이 룸미러에 비춰지자, 여름휴갓길에 나섰던 30대 아빠와 그 가족들이 깔깔거렸던 차 안 풍경이 되살아났다.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연신 입을 벌려대는 나에게 떡이며 빵이며 과일을 넣어주기 바빴고, 딸아이는 뒷자리에서 폴짝거리며 수수께끼나 끝말잇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했던 바비킴의 테이프, 댄스뮤직으로 가득한 테이프 그리고 딸의 애청곡만 엄선한 테이프, 이렇게 3종 세트를 몇 바퀴씩 돌려서 듣다보면 추풍령도 미시령도 손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시공간을 함께 한 지가 꽤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의 입시공부에 쫓기다보니 놀러 다니기도 어려웠고, 명절 때에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KTX안에서 우리끼리의 시간을 가지긴 어려웠던 거다. 우리의 고민이 ‘얼마나 빨리 갈까’인지 ‘어떻게 즐겁게 갈까’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어찌 보면 참 뻔한 사실을 머쓱하게도 깨달았다.

참! 지난 추석연휴 운전에서 장거리 운전의 불청객, 졸음은 어찌 되었을까? 체력이 월등히 좋아진 것도 아닌데 녀석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잘은 모르겠지만 졸음과 절친한 녀석은 ‘장거리 장시간 운전’이 아니라 ‘단조로운 거북이 운전’이었던 것 같다. 지난 추석 나는 수시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렸다. 요사이 IT 그리고 GPS 기술 덕분에, 하나도 막히지 않고 ‘쌩쌩’ 달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소요 시간은 꽉 막힌 고속도로를 통과한 경우와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왜냐하면 국도를 달리면서 이곳저곳 들러서 구경도 하고 먹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록 걸리는 시간도 비슷하고 기름 값은 더 들었겠지만 ‘쌩쌩 유람형’ 운전이 ‘오갈 데 없는 거북이’ 운전보다 훨씬 재미있고 안전했다.

그래서 이번 설에도 운전을 해서 고향에 다녀 올 생각이다. 기차표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 필요도 없고, 부모님 장모님 모시고 다니기에도 편리해서 좋다. 가장 좋은 건 고향을 향하면서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내와 딸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가족행사를 재발견했다는 점이다. 명절 쇨 장도 좀 보고, 오가는 동안 나눌 이야기 거리도 좀 생각해봐야겠다. 물론 시간에 쫓길 경우에는 좀 곤란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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