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형욱 사회문화팀 차장

“시(실·국)장님에게 보고가 안됐습니다.” “담당부서에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자료를)주지 말라고 했는데….”

최근 울산시정을 취재하면서 이전보다 부쩍 자주 듣게 되는 답변이다. 업무의 중요성이나 사업의 긴박성 등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대규모 인사이동 탓에 업무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겠거니 생각해 보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더 심각한 것은 실무 주무관들보다는 5급 이상 간부들 사이에서 이같은 답변을 듣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업무처리 과정에서 당연히 결재가 이뤄져야 하고 세부계획이 필요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경계마저도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주·월간업무보고회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업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답변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이비부머 공무원들의 집단 퇴직에 따른 승진 등 인사 영향이라는 얘기가 새어 나온다. 승진을 하려면 인사고과를 잘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평정권자인 상관에게 잘 보여야 한다. 상관의 눈밖에 나며 승진과는 거리가 멀어지거나 늦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부터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승진 폭이 크게 확대돼 이번 기회에 승진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상반기 인사에서만 해도 5급(사무관) 이상 간부공무원만 62명이 승진했다. 또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간 5급 이상 공무원 254명이 무더기로 퇴직한다. 연간 평균 50개 가량의 승진자리가 발생하다 보니 승진을 기대하는 직원들에겐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의 현상이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위를 바라보는 하향식 업무처리가 일반화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업무 처리 과정에서 노(No)라고 대답하기가 힘들다는 공무원도 있다. 문제는 일반 기업체 직원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일하는 봉사자라는 점이다.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던 국정홍보처 간부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말한 뒤 한동안 ‘공무원의 영혼’이 회자(膾炙)된 적이 있다.

김기현 울산시장도 지난 2014년 7월 시장 취임 이후 처음 가진 직원 정례조회에서 ‘영혼’이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영혼이 있는 시장이 되겠다”면서 직원들에게도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새로운 사고와 패러다임으로,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일해 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시장의 주문처럼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들이 절대 다수다. 하지만 일부 공직자에게는 묻고 싶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어 달라는 시장의 주문을 충실히 이해하고 있는지, 잘못된 판단에 대해 노우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물론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성실히 일할 수 있는 영혼이 있는 행정 패러다임이 안착됐는지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하루종일 결재서류만 들고 왔다갔다 해야 하는 행정체제에서 영혼있는 공무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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