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 내디딘 자랑스러운 울산인 시상
외솔 최현배·해석 정해영 선생 선정
울산의 자긍심 높일 인물 많이 나오길

▲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지난 12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재경울산향우회 신년하례식에는 예년에 없던 식순 하나가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 ‘자랑스러운 울산인’ 시상식이 그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울산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재경 울산향우회가 창립 47년만인 올해 ‘자랑스러운 울산인 상’을 제정하고 첫 시상식을 가진 것이다. 첫 수상자는 이미 고인이 된 외솔 최현배 선생과 해석 정해영 선생으로, 두 분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이 열렸다. 첫 수상자가 누구냐도 관심거리지만 이 같은 상을 처음 제정해 시상한다는 데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1915년 울산 북구 진장동에서 출생한 정해영 선생은 지난 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출발해 울산과 부산에서 7선 의원을 거치면서 제8대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정치적 화려함 보다는 ‘동천학사’ 설립자로 울산 출신들에게 더 알려진 인물. 재경울산향우회가 만들어지기 14년 전인 1955년 서울 성북구 혜화동 103번지에 동천학사란 기숙사를 만들어 울산(일부 부산) 출신 서울유학생들에게 값싸게 제공했다. 5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동천학사는 1980년 문을 닫을 때까지 울산 출신 인재 배출 요람이었다. 김태호, 차수명, 이규정, 김채겸, 심완구, 안우만, 최병국씨 등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지낸 이들 외에도 현역인 북구의 박대동 국회의원, 지검장 출신으로 현재 향우회장을 맡고 있는 안종택 변호사 등 울산을 빛낸 기라성 같은 이들 유명 인사들이 모두 동천학사 출신들이다.

1894년 울산 병영2동에서 태어난 최현배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국보급 인사.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에서 쫓겨났고 조선어학회사건에 휘말려 1941년부터 약 4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한글 가로풀어쓰기 연구에 평생을 매진해 한글의 정보화와 기계화에 앞장섰다. 한글타자기의 글자판이니 오늘날 컴퓨터 자판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그의 공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970년 3월 돌아가신 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이들 두 분 외에도 울산을 빛낸 인사들은 무수히 많다. 재경울산향우회는 당초 울산 소재 중·고교 동창회장, 울산 각 구·군 지역 향우회장, 울산지역 산우회장, 문수회, 삼산회, 무룡회 등의 간사, 재경향우회 고문, 자문위원, 회장단 등 2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 추천을 받아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최종 선정작업을 벌였다. 심사위원회는 최병국 전 국회의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황두열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박준곤 다나코리아 회장, 차의환 울산상의 상근부회장, 김겸효 리치올부동산 대표, 차숙자 재경 울산여상동문회 고문, 그리고 필자 등으로 구성됐다.

일반적으로 지역 향우회나 대학 동문회가 자랑스러운 OO인을 선정할 경우 한해의 활약상을 기초로 주로 현역에서 활동 중인 인사를 선정하는 것이 관례이다. 재경울산향우회는 그러나 첫 수상이라는 점을 감안해 그 대상을 향우회 창립 이후의 회원 중에서 선정할 수 있도록 대상 폭을 넓혔다. 또 지난 반세기 동안 울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공업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부 유입인구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도 고려됐다. 향우회 회원뿐 아니라 울산시민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적과 덕망, 그리고 국가와 울산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이 있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개선해 나갈 과제다.

자랑스러운 울산인 선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많은 훌륭한 분들이 이 상을 받아 울산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울산 사회의 통합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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