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형 울산광역시인권위원회 위원장 본보13기 독자위원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 지구체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된 지는 이미 오래고, 세계 경제는 안정성과 예측성이 훼손돼 너울성 파도처럼 변방을 때려 출렁이게 하고 있다. 또 잠복기를 지난 종교와 인종간의 갈등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빈발하게 나타나고 있고, 동서 패권과 이익을 둘러싼 강대국간의 대치도 불안한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지금 지구는 범 우주적인 재난 가능성과 지구 내부적인 갈등 폭발 위험성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와 불안에 싸여 미래가 안개 속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주의 물방울 한 방울로도 인간을 위한 첨단 과학기술은 종잇장처럼 무기력해 질 수도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예측하기 어려운 전환기에 놓인 불안으로 피로도가 양적, 질적으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현실세계가 한계에 부딪칠 때 인간을 구원해 주는 것은 과학이 아닌 인문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인문학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지혜를 가다듬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참된 삶, 웰빙(well-being)을 가르치는 대학의 학문이 실용적인 학문에 밀려 통폐합을 거쳐 대학 커리큘럼에서 사라지거나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상황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고 하니 몹시 우울한 소식이고,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인지의 발달은 과학에 힘입은 바 크지만 인간과 가치의 본질적 진화는 결국 인문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학의 기원이 중세시대 길드 조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르네상스에 진입하는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에서 시작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대학의 변화는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스런 변신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인문학의 위축은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인문학을 다루는 대학 학과의 통폐합도 어쩔 수 없는 고민의 산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대에서 인문학의 위축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잠시라도 인문학 그 어느 분야라도 맥을 끊어버리는 일만은 없어야 하겠다.

이런 고민스런 화두는 대학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극복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초 학문과 지적인 학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병행돼 어둡고 긴 터널에서도 빛으로 남아 있도록 힘을 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마지막 말로 회자되고 있는 글귀는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행한 마지막 연설과 상충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웰빙(well-being)이 되고 참된 삶이 되는 것인지 인문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면 둘러보세요. 진심으로 찾는다면 분명히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권오형 울산광역시인권위원회 위원장 본보13기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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