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식 디지털조이미디어 대표 본보13기독자위원

간판 중 한글 간판은 몇 개나 있을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영어 간판이거나 혹은 영어를 크게 써 놓고 한글을 작게 병기한 형태의 간판일 것이다.

외래어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점에 가서 아무 잡지나 골라서 펼쳐 보자. ‘뉴트럴 컬러는 시즌을 막론하고 런웨이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레이스 드레스를 덮는 청키한 스웨터에는 롱 코트를 매치하고’ 등 형용사와 접속사를 빼면 거의 영어다. 언젠부턴가 잡지, 쇼핑몰 등에서 위와 비슷한 형식의 외래어 아닌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고 우리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역시 소비자의 인식이다. 인하대 생활과학대학 의류디자인학과 윤용주, 나영주의 ‘의류 패션산업에서 순한글과 외래어 용어에 대한 감성 비교’ 논문을 보자. 논문은 20대 소비자 200명을 대상으로 패션 용어 표기에 따른 소비자 감성의 차이를 분석했다. ‘면마혼방 편한 바지, 코튼 리넨 이지 팬츠, Cotton Linen Easy Pants’. 이 세 가지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실제로 각각의 용어가 표기된 바지를 봤을 때 소비자는 ‘Cotton Linen Easy Pants’를 가장 비싸다고 생각했고, ‘코튼 리넨 이지 팬츠’를 그 다음으로, ‘면마혼방 편한 바지’를 가장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생활 전반에서 사용되는 영어의 비율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높아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 ‘마늘은 냄새나지만 갈릭은 맛있다’ ‘저는 계피향은 싫어해요. 시나몬 파우더는 좋아요’ 등을 예로 들어보자. 실제로 마늘과 갈릭은 같고 계피와 시나몬도 같은 말이지만 갈릭과 시나몬이 더 맛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또 장화는 촌스럽고 레인부츠는 멋있다고 느끼며, 회색보다는 그레이가 더 세련되었다고 느낀다. 이 같은 소비자의 막연한 인식 때문에 상품명을 결정할 때나 상품을 홍보할 때, 영어를 남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민성은, 홍영기의 ‘초등학교 영어전담교사로서 경험하는 영어 수업 속 식민주의’ 논문에서 흥미로운 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문화를 전달하는 교사 연구자의 사고 속에 영어를 우월한 언어로 여기는 식민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교사의 의식적, 무의식적 발언, 행동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영어에 대한 식민성을 재생산 시키고 있었다. 둘째, 학생들의 사고 체계 속에도 영어에 대한 식민성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영어를 잘하는 것을 다른 학생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또 영어권 국가의 사람이 여타 다른 동양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즉 편견의 결과로 꼭 사용해야 할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순우리말을 사용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노랗다, 누렇다, 샛노랗다, 싯누렇다’에 대응하는 영어 는 ‘Yellow’로 한글로 표현했을 때의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한글은 우리가 가꾸어 나가야할 소중한 유산이다. 일상 속에서의 지나친 영어 남발, 오늘부터 조금씩 고쳐보는 것은 어떨까.

이경식 디지털조이미디어 대표 본보13기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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