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성파스님이 들려주는 학(鶴)과 우리 문화(상)
원시인들의 눈에 비친 학은...이상세계로 날아가는 영물
고려청자에도 선명히 새겨져...조선조엔 두루미 사육하기도

▲ 영축총림 통도사 서운암의 성파 스님이 우리 학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 서운암의 성파 스님은 우리의 학(鶴) 문화에 대해 “일상과 종교를 초월한 자연의 이치에서 비롯됐다”며 “그 근원은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었으며, 단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연기념물인 ‘학’에 대해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데, 학을 매개로 한 다양한 역사문화현상들은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옛날 우리 땅에 들어온 불교는 깨달음의 진리를 알리는 방편으로 태양, 구름, 별과 같은 대자연 속 산천초목을 활용했다. 성파 스님은 우리 불교가 토속신앙과 융합하며 교세를 넓히게 된 과정을 들려주며 “원시신앙이 추구했던 이상세계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푸른 빛의 하늘’이었다”며 “원시인의 눈에 비친 ‘학’은 그들의 이상세계로 가장 가깝게 날아가는 영물로 비춰졌고, 그 같은 학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 청자·상감·구름·학·무늬 네귀 항아리

성파 스님은 우리 역사 속에서 불교가 가장 부흥했던 고려조에서 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를 짚어줬다. 바로 ‘고려청자’다.

청자는 원래 중국인들이 발명한 것이지만 고려가 뒤늦게 이 것을 받아들여 본 고장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예술품으로 발전시켰다. 고려가 청자를 개발한 것은 10세기 중반인데 당시 전 세계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송나라와 고려 단 두 나라 뿐이었다. 이후 일본이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17세기 초까지 무려 700여년 동안 자기제작술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성파 스님은 이에 대해 “고려청자의 푸른 빛은 불교의 극락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이 무한의 경지인 극락을 가까이 두고자 한 염원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교에서 극락세계는 유리광처럼 맑은 곳이라고 하는데 청자의 청아한 비취빛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것은 “고려청자 표면에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문양”이라며 “구름과 학을 새긴 것은 극락세계로 가는 과정을 나타내고자 한 불교의 색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극락세계를 사람들이 사는 일상 속에 두고자 한 불교교리의 산물이라고 했다.

▲ 학 모양을 확대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시대가 바뀌어도 학에 대한 선조들의 사랑은 각별했다. 조선조의 옛 문헌에는 실제로 두루미를 사육했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산림경제>에는 ‘학을 기르는 데는 오직 울음소리가 맑은 것을 최고로 치며, 긴 목에 다리가 멀쑥한 것이 좋다’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조선중기 문신인 윤의립(1568~1643)은 <산가청사>(山家淸事)에서 ‘학을 집 안에서 기를 때는 반드시 물과 대나무를 가까이 두고 물고기와 벼를 주어야 한다’고 썼다.

문학작품에서도 두루미 사육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춘향전의 여러 이본(異本)을 바탕으로 한 박동진의 창본 ‘춘향가’에는 암행어사 이몽룡이 거지꼴로 춘향의 집에 찾아가는 대목에서 ‘전에는 수미산 학두루미 한 자웅이 있더니, 한 마리는 어디가고 한 마리만 남았는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박지원의 <양반전>에도 ‘방에는 귀엣고리 요란한 기생들이요, 정원에는 목청 좋게 우는 학을 키운다’고 했다.

성파 스님은 아예 경치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고매한 학과 벗하며 지낸 선비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주인공은 조선의 명필가 황기로(1525~1575)다. 초서에 심취했던 그는 ‘초성’(草聖), ‘광초’(狂草)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서체를 확립해 왕희지 이후 일인자로 꼽혔다.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어는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그가 지은 ‘매학정’(梅鶴亭)이 있다. 그는 훗날 정자를 물려줄만큼 사위 이우(李瑀)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이우의 형이었던 율곡 이이(李珥)는 사돈 어른을 이르러 ‘빈 뜰에 매화송이 피어나고, 깊은 못에서는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10여리 떨어진 곳에서 텃밭을 일구는 신선같다’고 했다.

성파 스님은 “황기로와 매학정은 종종 중국 송나라 사람 임포(林逋)가 서호(西湖) 고산(孤山)으로 들어가 매화를 심고 학을 키우며 살던 것과 비교된다”며 “임포에 대해 사람들은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산다’고 해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했는데, 황기로 역시 임포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자처해 ‘고산’을 호로 삼고, 정자를 ‘매학정’으로 했다고 전한다”고 말했다.

성파 스님은 “우리 학 문화의 흐름은 원시적 신앙에서 불교와 같은 종교문화를 거쳐 예술적 경지로 이어지고 있다”며 “시대가 바뀌어 예전과 달리 학의 희소성이 부각되는 요즘은 생태개념으로 학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데, 이 또한 큰 틀에서 새로운 학문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글=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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