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패륜 만연한 인간성 상실 시대
이웃 위해 베풀다 떠난 천사도 있어
분노·증오 내려놓고 배려심 가져야

▲ 유성호 풍생고 교장

1908년에 발표된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은 인간 세상의 모순과 비리, 타락상을 비판하고 풍자한 개화기 우화소설의 대표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이 차례로 나와서 인간의 간사함과 포악성, 비윤리적인 태도 등을 비난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더러운 존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며 인간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100년 전의 동물들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흉악 범죄들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정말 요즘은 인간인 것이 부끄러워진다. 몇 년 전까지는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던 패륜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최근에는 온갖 학대 끝에 자식을 죽게 만든 금수(禽獸)만도 못한 부모들이 잇따라 나타나 메가톤급 충격을 주고 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 본능적인 부성애, 모성애로 새끼들을 잘도 키우는데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참극에 온 국민은 비통함과 참담함을 넘어 심한 자괴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최근에는 아동 학대뿐만 아니라 보복 운전으로 상대방 운전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 간에 칼부림을 벌이는 등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간성 파괴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겸양(謙讓)과 예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우리 국민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미개한 짐승보다 더 포악해졌을까?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세상은 점점 편리하고 살기 좋아진다는데 어떻게 우리 사회는 갈수록 더 각박하고 암울해지는가?

궁핍한 생활 속에서 오히려 빛나던 가족애와 치열한 전장 속에서도 넘쳐나던 휴머니즘이 최첨단의 과학기술시대에 오히려 실종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나친 생존경쟁과 심각한 경제난으로 더욱 팍팍해진 우리네 살림살이 때문인가? 가난은 우리의 삶을 얼마간 불편하게는 만들겠지만 결코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을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도현 <가난하다는 것>얼마 전 서울 영등포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인 구두수선공 강상호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강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낮에는 구두닦이, 밤엔 때밀이로 악착같이 일을 하여 1평 구두 가게를 어렵게 장만했다. 하지만 정신지체를 앓는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던 강씨는 자신보다 더 어렵게 사는 이웃 70대 할머니를 돕기 위해 새벽마다 폐지를 모으러 나섰다가 음주운전 화물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가족도 아니면서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다 하늘로 떠난 천사의 이야기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이 세상에 남겨진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세상에 입에 담기 힘든 그런 비극적인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 모두 미움, 분노, 증오의 감정을 애써 내려놓고 이해, 배려, 관용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자신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가족과 이웃에게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자. 세상은 함께 할 때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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