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 선점 위해 표준 활용 필수
개발·기획단계에서 표준화 병행하고
대외 협상력 높여 국제 표준화 나서야

▲ 김창룡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먼 옛날 중국의 진시황과 로마의 시저는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가장 먼저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마차의 바퀴와 도로의 규격을 정비했다. 이러한 정책은 우선적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한 목적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오늘날의 표준화 개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중국 심양을 방문했을 때,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궁궐의 돌담 벽돌 하나하나에 만든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해 한 적이 있다. 이미 400여 년 전에 오늘날의 제조자 실명제와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벽돌의 크기와 모양을 똑같게 통일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지원의 <연암일기>나 박제가의 <북학의> 등에도 백성들을 편리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수레바퀴나 창틀, 종이, 벽돌 등의 크기와 모양을 통일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수 없이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말 일본 신사유람단의 기행문에는 ‘일본의 집들은 창문이 사각형 격자로 돼 크기와 모양이 같기 때문에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더라도 언제든지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한 것 같다’라는 글이 자주 나온다. 또한,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의 종이 크기가 지방마다 달라서 임금에게 보고하거나 보관할 때 불편했다는 기록도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했던 것도 생산기계는 물론 볼트나 나사 등 각종 부품의 규격이 하나로 통일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에 관한 이야기다. 표준이란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한 기준을 말한다. 만약 우리가 매일같이 쓰는 A4 인쇄용지가 표준화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오늘날 세계 각국의 선진기업들은 자사의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반영하기 위해 숨 막히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정기술이 표준으로 정해지면 그 밖의 기술은 아무리 우수해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과거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표준을 놓고 벌인 VHS와 베타 방식간의 싸움을 비롯해,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해 만든 MPEG(동영상 압축 기술) 기술의 승리사례나 데이터 인터페이스 표준을 놓고 벌인 USB와 IEEE1394 간의 경쟁 등에서 패한 기술은 시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은 표준을 선점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승패가 달려있는 표준전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표준을 선점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삼성과 애플이 스마트폰 기술을 둘러싸고 지난 몇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지식재산권 싸움의 이면에도 바로 표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비록 표준화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늦게 시작됐으나, 오늘날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발표된 우리나라 표준특허 누적건수가 2014년 6위에서 지난해에는 독일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는 뉴스는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기만 하다. 우리 기업이 각종 기술규제와 같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회피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영의 툴로서 표준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연구개발 기획단계에서부터 표준동향을 조사하고 연구개발과 표준화를 병행해 그 결과가 국제표준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외적인 협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치열한 글로벌 표준전쟁에서 승리해 표준강국으로 우뚝 서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창룡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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