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형 울산광역시인권위원회 위원장 본보13기 독자위원

울산 태화강은 상류의 선사시대 유적지로부터 시작, 중류의 십리대밭으로 대변되는 생태하천의 두루미 서식지와 까마귀 군무를 거쳐 하류의 억새밭을 지나 하구의 모래톱에 이르기까지 그 전부가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하지만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 태화강의 스토리텔링이 초보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울산 전역을 대상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으로 문화와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야심찬 기획과 지원이 속속 진행되고 있는데 비하면 태화강 스토리는 아직 텔링되지 못한 채 고식적인 이벤트성 행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아쉬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집이라고 명명된 이탈리아 시골 동네 하나가 전 세계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고 싶어 하는 관광명소가 된지는 이미 오래됐고, 이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에 터 잡아 오페라,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등 문화예술 산업으로 확대 재생산, 비수기 없는 수익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울산 태화강의 스토리는 어떤가. 1억년 전 백악기에 공룡이 대곡천 바위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더니 5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는 원시인이 대곡천 주변에서 수렵과 어로를 하며 그 생활상을 바위에 돌로 그리고 새기는 초유의 기록 문화를 남겼고, 1500년 전 신라의 화랑들은 대곡천 선사인들의 각석과 암각화에 화답하듯 암각화를 남겨 선사문화를 역사문화로 승계하더니,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대곡천 선사유적에서 발원하는 태화강 본류를 따라 대밭과 억새밭을 일궈 생태환경을 복원함으로써 1억년을 관통하는 역사를 잇고 있다.

세계인들 누구나 한 번 듣기만 해도 단숨에 그 스토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태화강 스토리텔링의 모티브는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지 않을까.

단초는 열렸다. 소설 <반구대>가 출간되고 오페라로 재생산됐으며 만화로 접근성을 확대하는 등 미약하나마 태화강의 스토리텔링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 동안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을 울산시와 각 구군이 좀 더 합심해 태화강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인식의 제고와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역량을 결집해 국민 모두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을 완성, 비수기 없는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의 명소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 태화강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1억년 동안 물려받아 온 선사인의 숨소리가 묻어 있는 유적을 손쉬운 식수공급 해결을 위해 수장시켰다는, 회복할 수 없는 과오를 더 이상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지간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구대 암각화는 빠른 시간 내에 확실한 방법으로 보존 방법이 결정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생태 제방이든, 임시 물막이든,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배제하면서 말이다. 댐의 수위가 낮아 목이 타 들어가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권오형 울산광역시인권위원회 위원장 본보13기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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