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집 만큼 안전한 사업장-네스테
선진 안전문화 바이러스를 울산 전역으로 -제2부 국내외 선진 사례를 배우다

▲ 네스테 포르보공장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모습. 이들은 강력한 안전규정이 곧 안전한 일터가 조성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Perheeni voi asua tehtaalla.”(나는 가족들과 함께 공장 안에서 살 수 있다.)

핀란드의 최대 석유회사인 네스테 마띠 리에보넨 대표이사가 수시로 하는 말이다. 언제라도 폭발·화재 등의 위험이 있는 석유회사지만 안전성에 있어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물론 대표이사가 공장 내에서 실제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직원들에게 자신의 가족이 공장 내에서 살 수 있을 만큼의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당부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산업사고 없는 사업장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와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안전성 확보 지역 주민에 신뢰
화학단지 매캐한 악취도 없어
비용 들더라도 위험요인은 제거

◇악취 없는 석유공장

본보 취재진이 지난달 방문한 네스테 포르보공장에선 매캐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네스테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포르보공장은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한 공단 중심에 들어서 있지만 취재진의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는 일반 주거지역과도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석유화학단지에선 ‘반드시’ 매캐한 악취가 난다고 믿어왔지만 포르보공장을 둘러보면서 그동안 취재진이 가져온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스테 마르자나 수오미넨 홍보 매니저는 “유럽연합(EU)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환경정책을 추진하는 핀란드 정부와 가족들이 살 수 있을 정도의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네스테 대표이사 등의 합작품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948년 설립된 네스테는 핀란드 정부가 50.1%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디젤, 가솔린, 솔벤트, 프로판, 비튜멘 등 15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15개국 50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하며, 생산되는 제품은 핀란드(40%), 유럽(48%), 미국·캐나다(8%) 등지에서 소진된다.

▲ 마르자나 수오미넨 홍보 매니저가 네스테 포르보공장 설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고예방 위한 실천이 중요

네스테에서 지난 2011년 불명예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한 하청업체 근로자가 석유정제 탱크 상단부 작업을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추락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근로자는 하나씩 주어지는 안전벨트를 제대로 장착하지 않고 사다리를 올라가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근로자 부주의에 따른 사고로 판명 났지만 사고 이후 네스테가 내놓은 안전정책은 차원이 다르다. 안전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수천 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안전벨트를 하나씩 더 지급했다.

마르쿠 피르네스 플랜트 설비 매니저는 “비용이 수반되지만 대표이사나 이사회 역시 안전에 대한 투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라며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점검하고 위험요인을 제거한 사례”라고 말했다.

네스테에선 기본적인 안전규정도 철저히 지켜진다. 포르보 공장 정문에서 안전보건부서(HSE)가 위치한 사무실로 본보 취재진을 인솔하던 마르자나 수오미넨 홍보 매니저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왜 그런지를 묻는 취재진에게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넘어질 수 있고 뛰다가 미끄러질 수 있지만 손잡이를 잡으면 이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안전 기업으로 알려진 듀폰에서 벤치마킹한 안전 규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규정을 지키지 않다 적발되면 최초 구두경고, 두 번째 서면경고에 이어 마지막으로 해고까지 가능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고 한다.
 

▲ 자리 스테니우스 안전보건 매니저가 “CEO의 강력한 안전 마인드가 사고 예방으로 직결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자리 스테니우스 포르보공장 안전보건 매니저
“CEO의 강력한 안전 의식, 사고예방 첫 걸음”

네스테 포르보공장 자리 스테니우스 안전보건 매니저는 CEO의 강력한 안전 마인드가 결국 사고 예방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본보 취재진에게 “모든 사고는 막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밝힌 그는 “한국의 모든 CEO들이 자신의 공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안전정책을 추진한다면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근로자들에게 안전규정을 지키면 결국 자신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 시켜줘야 한다. 개개인의 안전 마인드가 높아져야 안전문화도 정착될 수 있다. 안전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네스테의 경우 안전에 무관심한 CEO가 임명되더라도 이사회에서 근로자 안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강력한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안전비용에 비해 높은 벌금도 영향을 미친다.”

-특별한 안전관리를 소개해 달라.

“모든 시설을 시스템화해 각 설비마다 어떤 리스크(위험)가 있는지를 사전 점검·대처한다. 세계 각국의 사고를 분석해 우리 공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고 대책을 세우기도 한다. 가스 누출 우려가 있는 공장 특성 때문에 지난 2012년부터 근로자들에게 가스 누출 측정기를 지급한다. 당시 전화기 크기의 측정기를 항상 소지해야 하는데 대한 근로자들의 불만이 표출됐지만 불편함이 곧 근로자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해 지금은 근로자 스스로 누출 여부를 점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하청업체 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은.

“하청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그 책임의 절반은 원청에 있다. 이 부분은 하도급 계약서에도 명시된다. 그러다보니 하청을 선정할 때 업무 능력만큼이나 안전실적을 중요시한다. 또 원·하청에서 사고가 나면 당일 CEO와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이 부분 역시 부담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한다.”

핀란드 포르보 / 글=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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