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국내외 선진 사례를 배우다- (4) 근로자 안전이 곧 국력-핀란드

▲ 핀란드 사회보건부 시르쿠 사리코스키 대변인과 투케스 공정안전부 리나 아호넨 책임자가 지난 4월 투케스 본부를 방문한 본보 취재진에게 화학업종 사고 예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복지혜택으로 보답
화학업종 전담 기구도 마련
안전투자 늘리니 사고 줄어

핀란드는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꼽힌다. 국민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활·교육·주거 등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지원받는다. 대신 근로자들은 소득의 약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고소득자일수록 납세 비율이 높다. 정부는 근로자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다시 국민들에게 복지 혜택으로 보답한다. 흔히들 핀란드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이고 핀란드인을 ‘선택 받은 국민’이라고도 한다.

◇근로자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

핀란드에서 근로자는 국가가 유지되는 원동력이다. 세금을 내는 근로자가 있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올해 IMF(국제통화기금) 기준으로 핀란드 국민 1인당 GDP는 4만2654달러로, 한국(2만5990달러)에 비해 1.6배 높다. 국민들의 세금 부담률은 한국에 비해 2~3배 높다.

핀란드에서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면 그만큼 걷어 들일 수 있는 세금이 줄어든다. 그래서 어느 국가보다 산업현장에서의 근로자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인다. 핀란드 역시 영국의 일명 ‘기업살인법’ 수준은 아니지만 안전사고에 대한 벌금 액수가 상당히 높다. 사안별로 차이가 나지만 최소한 기업이 투자했어야 했을 안전비용 이상을 벌금으로 부과한다.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 범위도 안전 관리자부터 CEO까지다. 회사 이사회에도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다.

핀란드 내 산업안전·노동·보건 기능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사회보건부 시르쿠 사리코스키 대변인은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면 정부는 세금을 걷지 못하고 오히려 사고보험료를 지급해야 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며 “근로자들이 안전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또 폭발 또는 누출사고 위험이 있는 화학업종이나 규모가 크고 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인 투케스(TUKES·안전화학물질청)를 따로 두고 있다. 대상사업장은 약 1000곳이다. 투케스는 사고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중 안전관리가 부실하다고 판단된 사업장의 경우 매년 점검을 받고, 안전관리가 철저한 사업장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점검 받는다. 매년 점검을 받는 사업장에서 사고가 날 경우 부과되는 벌금도 많아진다. 기업 입장에선 불가피하게 사고가 나더라도 평소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또는 안전 점검 횟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안전관리에 신경을 쓴다. 핀란드에는 유럽연합(EU) 산하 화학물질관리청(ECHA) 본부가 위치할 정도로 유럽 내에서도 화학업종 사고예방 우수 국가로 꼽힌다.

▲ 핀란드 근로자들은 작업시 눈에 띄는 형광색의 안전복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이 같은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다 사고를 당하면 그 책임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가 사고 보상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화학업종 사망사고 0건

투케스가 관리하는 화학업종 또는 위험 사업장에서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14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2010년 19건, 2011년 29건, 2012년 37건, 2013년 24건, 2014년 32건이다. 전체 사고 중 누출이 110건으로 가장 많았고 화재(13건), 기타(10건), 폭발(6건), 장비손상(2건) 등의 순이었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 건수는 2010년 5건, 2011년 9건, 2012년 9건, 2013년 12건, 2014년 8건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사망자 수다.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매년 1명에 불과했고, 2013년과 2014년도에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형 화학기업 또는 폭발·누출 우려가 높은 사업장에서 지난 2년간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나 기업 또는 근로자들이 안전관리에 철저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투케스 공정안전부 리나 아호넨 책임자는 “근로자들이 자리를 비우지 않고 일을 해야 사회·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하는 사업장일수록 사고가 줄어든다는 연구·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법을 강화했고, 사고 책임을 명확하게 나누다보니 사용자나 근로자 모두 규정을 지켜 사고를 줄이는 결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 투케스 공정안전부 리나 아호넨 책임자

인터뷰 / 투케스 공정안전부 리나 아호넨 책임자
“직원들 안전절차 준수, CEO의 역할이 중요”

핀란드는 폭발·누출사고 우려가 있는 화학업종만을 전담하는 정부기구인 투케스를 따로 두고 있다. 그만큼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전담한다. 물론 작업중지권이나 조사권 등의 강력한 권한도 가지고 있다. 산재사고에 대한 벌금 액수를 정하기도 한다. 투케스 공정안전부 리나 아호넨(사진) 책임자는 “핀란드에선 위험성이 인지될 경우 사업장에 수정 개선명령을 내리고 이행되지 않으면 벌금 경고를 한 뒤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하청업체 사고가 잦은지.

“핀란드 화학업종에서 하청업체 발생 사고 비율은 10% 미만이다. 원청업체가 하청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평가를 한 뒤 작업을 한다. 또한 원청은 하청에 위험성 등을 알릴 의무가 있다.”

-작업자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나면.

“지난 4월 중순께 사례를 소개하면 나무 먼지를 너무 많이 들이마신 근로자가 암에 걸려 산재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회사는 작업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안전규정을 갖고 있었고, 근로자들에게 마스크도 충분히 지급했다. 하지만 이 근로자는 귀찮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자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규정을 지키지 않아 질병을 얻었다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산재사고가 잦은 한국에 조언 한마디 한다면.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직원들이 안전 절차를 지키도록 CEO가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회사는 작업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사전에 조사하고 대처해야 한다.”

핀란드 헬싱키 / 글=이왕수기자 wslee@·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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