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암각화 마을

▲ 이탈리아 발카모니카암각화 카포 디 폰테 마을에 있는 암각화의 문양.

세계문화유산은 163개국에 걸쳐 1031건(2015년 7월 기준)이나 된다. 그 중 바위그림(암각화 및 암채화 등) 관련, 세계문화유산은 20건이다.

가장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하일지방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아랍인의 선조들은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암면조각과 명문(銘文)으로 남겼다. 암각화가 있는 곳은 모래로 뒤덮힌 사막 한가운데다. 이 유산은 1만 년에 걸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를 보여준다.

2014년에는 이미 암각화 세계유산(라스코 동굴벽화)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또다시 세계유산이 나왔다. ‘퐁다르크 장식동굴’은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강을 따라 형성된 석회암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면적이 8500㎡에 이른다. 제작시기가 3만 년 전으로 세계 암각화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판명됐다. 4000점 이상의 선사시대 동물상과 다양한 형태의 사람 손자국 및 발자국이 잘 보존돼 있다.

 

지난 5월 말~6월 초, 본보 취재팀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州) 브레시아현(縣) 발 카모니카의 암각화(Rock Drawings in Valcamonica)를 취재했다. 이탈리아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다. 총 51건(우리나라는 12건)이나 된다. 발 카모니카 암각화는 이탈리아 제1호 세계문화유산(1979년 등재)이다.

8천년전 선사시대 동물문양부터
중세·근대에 이르는 암각화 공존
이탈리아 ‘제1호 세계문화유산’

8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발 카모니카 암각화는 70여 ㎞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38개 마을에 걸쳐 총 2400여 면, 14만 점 이상의 바위그림으로 구성된다. 선사시대뿐 아니라 로마, 중세, 근대에 걸쳐 그려진 암각화가 공존한다. 단순한 동물 문양이나 사냥활동을 묘사한 그림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선사인이 농경사회 정착단계로 넘어가 사육한 동물로 밭을 갈고 곡물을 거두는 장면도 나온다. 제사나 의식을 주제로 한 종교적인 그림,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철기시대 고상 가옥과 전투 장면, 일정 구역의 지형물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그림까지 확인된다.

▲ 카포 디 폰테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암각화 조형물.

카포 디 폰테(Capo di Ponte) 마을은 남북으로 길다랗게 연결되는 발 카모니카의 중간 즈음에 해당한다. 이 마을에 들어 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눈에 이 곳이 암각화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초입의 작은 로터리에서 시작된 암각화 문양의 구조물은 거리와 골목, 어느 집 정원의 벤치에 이르기까지 눈길과 발길이 닿는한 계속 등장한다.

▲ 이탈리아 발카모니카암각화는 카포 디 폰테 마을을 비롯해 총 38개 마을에 걸쳐 14만여점의 암각화가 분포돼 있다.

암각화가 밀집한 발 카모니카 내 38개 구역 중 하나인 카포 디 폰테는 이들 암각화군을 가장 먼저 학계에 보고 한 지리학자 월커 레앙에 이어 아니티 박사가 선사학연구소(CCSP)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 마을과 뒷산 곳곳의 암각화는 자연환경 그대로 여기저기 흩어져 누구나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연구소에서 불과 1분여 거리에 떨어진 마을 뒷편에는 4개의 커다란 바위가 수 천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옛 모습 그대로 앉아있다. 바위 주변으로는 드넓은 목초가 펼쳐져 있으며 그 주변에는 방목하는 염소까지 볼 수 있어 선사인의 체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5천여평 마을 가장자리에 울타리
CCTV 감시·모니터 요원 상주
인근주민도 보존활동에 적극 나서

무분별한 현장 접근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약 5000여평 가장자리에는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방문객은 울타리가 개방되는 오전 10시 전후부터 오후 4시 이전에만 이 곳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현장을 비추는 CCTV가 가동된다. 이를 모니터하는 요원은 현장에서 불과 3~5분 거리의 마을 안내센터에 상주한다. 그들는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간혹 바위그림의 매력에 흠뻑 빠진 관람객들에게 폐장시간이 임박하니 나갈 채비를 하라는 등의 경고용 멘트를 하기도 한다.

▲ 암각화 현장에서 관리인이 본사 취재팀에게 암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사 취재팀은 발 카모니카 전역의 암각화 규모를 감안할 때 일개 마을에 불과한 카포 디 폰테와 같은 시스템이 유적지 전역에서 운영되려면 당연히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과 인력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현장 안내인인 알베르토 도우터씨는 “이 모든 시스템의 중심에는 유네스코(UNESCO)와 로마의 문화재보존센터(ICCROM), 그리고 점조직화된 발카모니카 랜드마크 투어사무소와 함께 현장 주변의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보존활동에 적극 가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마을문화행사 지원사업이 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암각화의 특성상 사전에 예고된 연구자 및 학술단체 방문이 적지 않지만, 이는 전문가들의 몫”이라며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불특정 일반인 관광객을 위한 상시대응 시스템이 꼭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홍영진·사진=김경우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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