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
정부 재벌중심 정책 폐기돼야

▲ 김진영 전 울산시의원

“너거 아들은 괜찮나” “니 신랑은 괜찮나” “너희 아빠는 괜찮나”. 요즘 동구지역에는 ‘괜찮나’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미포만에 여명이 밝아오면서 시작되는 ‘괜찮나’의 물음은 어둠이 짙게 깔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마치 유행가 가사를 따라부르는 것처럼 ‘괜찮나’라는 물음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 입에서 꺼내기가 힘겨운 상황이다.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함축돼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점점 절망의 아우성이 되고 있다. 넓고 깊게, 그리고 크고 높게 퍼지고 있다.

조선업 경기불황으로 현대중공업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조국근대화의 산업역군으로 그리고 더불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염원했던 노동전사로 30~40년을 오로지 한 직장에서 피땀흘려 이룩해낸 성과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이후에 태어나 보릿고개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준비 없는 ‘해고=살인’이라는 천형이 닥치고 있다. 능력 없는 가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천직이라 여겼던 직장에서 이제는 밥만 축낸다는 비아냥을 한몸에 받으며 버림을 받거나, 버림을 받기 직전에 내몰려 있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이미 1500여명이 정든 직장을 떠났다. 희망퇴직이라는 미명아래 직원 솎아내기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3000명도 모자라 더 자른다는 흉흉한 소문만이 무성하다.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직장은 활력을 잃은 지 오래고, 직원들의 얼굴도 생기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올해 구조조정과 관련, 회사 바깥은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운데 내부에서는 너무도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1500명이 쫓겨날때만 해도 당사자들은 분노했고, 사무직노동조합을 만들어 저항했다.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져서인지 지금은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길 바라며, 숨죽이며 지내고 있는 것이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일상이 됐다.

곁에서 지켜본 구조조정에 따른 5단계를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면 처음에는 ‘부정’을 하게 된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분노’하게 된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데 나를 짜른다는 말인가라는 배신감에 휩싸이게 된다. 분노가 극에 달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빠질 수 있는 길이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본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타협’의 길을 찾는다. 정규직에서 잘리더라도 계약직으로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찾아본다. 이런 단계를 거치며 무력감에 빠지면서 ‘우울’해진다. 이때부터 고향부모, 친지들에게 뭐라 말하지, 처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온통 심신을 지배한다. 적금도 해약하고 보험도 해지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마지못해 구조조정을 인정하는 ‘수용’의 단계를 거치면 생의 희망은 점점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중년의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다.

박정희 정부때부터 정부의 온갖 혜택 속에서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놓은 것이 현대중공업의 오늘이다. 성과와 결실은 곶감 빼먹듯 곳간에 사재를 쌓아놓으면서 위기와 시련 앞에서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올바른 구조조정의 순서가 아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모는 재벌이익 중심의 정부 정책은 폐기되어야 하며, 최대 주주를 비롯한 경영진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와 반성, 그리고 해고를 제외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김진영 전 울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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