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단순히 영국이 40여 년간 가입해 왔던 EU에서 탈퇴한다는 의미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고립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경향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25일(현지시간) 사설에서 “영국인이 EU 탈퇴를 선택하면서 EU는 부정당하고 패배했다”면서 “EU는 안으로 약해졌으며 밖으로도 쇠퇴하는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남은 27개 EU 회원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처럼 그대로 해 나가면 최악의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면서 “안전과 국경 강화 요구 등 투표에 드러난 민심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사설에서 “영국민의 절반은 자국과 EU에서 권력과 부(富), 특권을 휘두르는 계층, 그리고 자신들을 쥐어짜고 있다고 느끼는 열강들을 향해 분노와 좌절을 터뜨렸다”고 브렉시트 배경을 분석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한 가장 큰 이슈는 이민과 세계화가 거론된다.

영국 BBC 방송은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후보인 트럼프 열풍의 공통 키워드로 유권자의 분노, 세계화, 이민, 잃어버린 자부심,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등 5가지를 꼽은 바 있다.

영국에서는 EU 관료주의자들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는 데다 세계화로 인한 이민자 증가와 자유무역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뒤이은 남유럽발 재정위기로 유럽 전역에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청년 실업률이 치솟았다.

장기 불황으로 양극화가 심해졌으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은 분노했다. 이에 더해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며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난민이 급증하고 지난해 파리 테러 등 이슬람교도 이민자의 테러까지 잇달아 터지면서 이민자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 내 이민자는 전체 인구의 약 13%인 84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이민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신고립주의가 얼마나 확산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브렉시트를 선택하면 영국 경제가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세계 지도자들의 경고에도 영국민은 EU에 양도했던 주권을 되찾고 이민자와 난민을 국경에서 차단하기를 원했다.

EU 지도자들이 우려하듯 이런 움직임은 비단 영국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은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EU 탈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브렉시트 결과가 나오자 당장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 포퓰리즘 정당들은 자국에서도 EU 탈퇴를 위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브렉시트를 반기면서 “내가 여러 해 동안 요구해 왔듯이 프랑스와 EU에서 똑같은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르펜 대표는 그동안 유로화 사용과 솅겐 조약을 비판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공연히 말한 바 있다.

브렉시트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도 적지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 반이민과 고립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대권 가도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우리나라를 되찾자’(Take back our country)는 함의가 비슷한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는 영국의 EU 탈퇴 결정에 대해 “그들의 국가를 되찾았으며, 그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대선에 미칠 여파에 대해선 “두고 보자”고 말을 아꼈다.

미국 CBS방송는 최근 트럼프 지지자와 브렉시트 지지자 모두 ‘분노’와 ‘불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성 정치에 대해, 그리고 이민자 등에게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양측 지지자들은 공통으로 분노와 불만의 정서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진영의 예상 밖 승리는 세계화나 이민에 대한 반감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에서 보듯이 미국 대선에서도 이러한 표심이 반영돼 트럼프가 깜짝 승리를 거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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