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 르네상스’ 역사왜곡 우려
중구지역에 존재하는 성곽은 5곳

▲ 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수년전부터 울산지역에서는 중구 관내의 성곽유적에 대해 ‘육성(六城)’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 중구청에서는 ‘학성산 둘레길’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학성산을 계변성이라고 공식설명하고 있고, 울산광역시가 펴낸 성곽과 문화재 관련 자료에도 계변성의 위치를 학성산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나 보고서 기술에는 문제점이 있다.

첫째, 울산시 중구 관내에서 존재가 확인된 성곽은 6개소가 아닌 5개소이기 때문이다. 중구가 추진하는 ‘육성(六城) 르네상스’의 6성은 계변성, 반구동 토성, 고읍성, 병영성, 왜성, 울산읍성이다. 그런데 병영성과 왜성, 그리고 북정동 일대의 읍성 위치에는 이론이 없지만 계변성과 고읍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필자는 반구동 유적(토성)이 계변성이며, 학성산 토성은 고읍성이라고 판단한다. 학문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성곽을 두고 공공기관이 한 가지 주장만 받아들여서 정비사업을 하거나 보고서를 발행하게 되면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둘째, 계변성과 고읍성은 과거의 기록에 등장하는 명칭이지만 반구동 유적은 그렇지 않다. 이 유적은 1991년 동아대가 발굴했고, 2008년에는 울산발전연구원이 조사했다. 울산발전연구원은 발굴보고서에서 이 유적을 “울산시 중심부의 대규모 토성”이라고 했다. 대규모 목책성도 함께 발견됐다. 발굴조사에서 임의로 붙인 ‘반구동 유적’이라는 명칭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울산 지역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필자가 반구동 유적을 계변성으로 보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곳을 발굴 조사한 울산발전연구원과 같은 입장이다. 8~9세기의 대형 목책성과 신라말기에서 고려 전기에 축조된 토성이 중첩돼 확인된 고고학적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경상도지리지>(1425)의 기록에 대한 해석이다. 그 내용은 ‘(울산은) 원래 계변성이라 했는데, 신라 때인 901년에 ‘신학성’으로 고쳤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당시 울산고을 이름은 ‘하곡현’이었다. ‘하곡성’이 아니고 ‘계변성’으로 불린 것은 이 성곽이 울산고을의 치소성이 아니라 신라 수도 경주의 직할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 왕경의 황룡사에서 출토되는 수준의 기와 같은 유물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러면 901년에 계변성에서 ‘신학성’으로 바뀐 이유는 뭘까. 이 해는 신라 효공왕 5년이고, 후백제 견훤 10년이며, 후 고구려 궁예 원년이다. 영웅호걸이 득세하던 후삼국시대로 ‘쌍학이 계변성 신두산에서 울어서’ 신학성이 되었다는 경상도지리지의 내용은 울산에서 호족 박윤웅이 등장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의 내용을 볼 때 ‘신학성’이 신라 때 명칭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해 ‘학성’은 고려 때 성종이 내린 울산고을의 별호다. 설사 ‘신학성’과 ‘학성’의 유래가 같다 하더라도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학계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간과했다. 그리고 991년에 흥려부를 공화현으로 4단계나 강등시켰다가 다시 복귀시킨 일이나 997년에 성종이 울산을 방문한 사건은 박윤웅의 신학성을 버리고 새로운 울주 치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소동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 사건이 종결된 후인 1011년에 축성된 울주성은 학성산에 자리 잡았다. 울주성은 고려 말인 1385년에 개축되었고, 조선 초인 1413년까지도 울주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가 고을이름이 ‘울산’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울산읍성’이 됐다. 1426년에는 성내의 관아가 모두 지금의 병영성으로 이전하면서 빈 성이 되었다. 그 후 이 성은 ‘고읍성’이라고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 성은 별호가 학성인 고려시대의 치소성이었고, 성 안에는 고을 성황신인 박윤웅을 모신 ‘계변고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성터가 있는 산을 지금까지 ‘학성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학성산은 신학성이 있던 곳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학성 즉 울주성이 있던 곳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울산 중심부의 성곽역사는 다시 쓰여 져야 한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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