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불사 방향의 산행길에서 만난 거대한 소나무.

지리산(智異山) 칠암자 순례 산행에 나섰다. 지리산 북쪽에는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삼정산(三政山, 해발 1182m)이 있다. 천왕봉(天王峰)에서 반야봉(般若峰), 만복대(萬福臺), 바래봉까지 지리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다.

삼정산 동남쪽 능선 자락에는 도솔암(兜率庵), 영원사(靈源寺), 상무주암(上無住庵), 문수암(文殊庵), 삼불사(三佛寺), 약수암(藥水庵), 실상사(實相寺) 등 7개의 암자와 사찰이 있다. 주소지 기준으로는 경남 함양 마천면과 전북 남원 산내면에 걸쳐 있다. 대부분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있어 웬만한 등산과 별 차이가 없다. 이들 암자와 사찰을 둘러보는 산행 코스를 ‘지리산 칠암자 순례 산행’이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 장맛비 예보를 접하고 출발하면서 내심 갈등이 없지 않았다. 지난 5월에도 갑작스런 일로 무산된 적이 있어 일정을 다시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현지에서 합류한 일행들도 이심전심이었을까. 지리산 칠암자 순례 산행을 강행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하늘이 도와줄 것 같고 산을 믿는 수밖에 없다. 어느 코스로 걸을지 선택만 남았다.

삼정산 동남쪽 능선에 줄지어 선
도솔암·영원사 등 7개 사찰·암자
맑은 날엔 지리산 전체 조망 가능
흐린 날 만나는 자욱한 운해 장관

산행은 대개 두 가지 코스로 진행된다. 실상사에서 시작해 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으로 걷거나, 음정(陰丁)마을에서 시작해 벽소령(碧宵嶺) 임도인 작전도로를 걷다가 도솔암에 오른 뒤 실상사로 걷는 반대 코스다. 전자는 해발고도를 점점 높이며 올라야 하는 다소 버거운 산행인 반면, 후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발걸음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일행은 후자를 코스로 정했지만 어떻게든 짧게는 6시간30분, 길게는 8시간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 삼불사와 실상사 중간의 약수암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오르는 약수 샘이 있다.

남원에 들어설 무렵부터 슬금슬금 비가 뿌려대기 시작했다. 실상사에서 만난 일행은 영원사 입구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산행을 도솔암부터 시작하고 싶어도 내년 2월말까지 휴식년제에 묶여있는데다 날씨사정을 감안해야 했다. 실상사에서 영원사 입구까지 택시비는 2만4000원. 택시기사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 예보를 걱정하면서도 산길 걷기는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산행 도중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산객에게 남은 거리나 시간을 물으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가 한결같은 대답이 아닌가.

영원사 입구에서 하차를 하자마자 빗방울이 굵어져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행객들이 영원사를 거친 뒤 도솔암 진입로를 못 찾고는 무심코 지나쳐 실패가 잦다는 곳이다. 천왕봉도 보인다는 도솔암 전망대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은 쏟아지는 빗물에 흘려보냈다. 도솔암~영원사 구간만 산행 일정에서 빠져도 전체 거리가 크게 줄어들어 여유 있는 산행은 보장받은 셈이니까. 도솔암은 경남 함양 마천면 삼정리에 있는 신라 고찰이다. 서산대사의 법제자인 청매(靑梅) 인오(印悟, 1548~1623) 스님이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천에서 함양읍으로 넘어가는 오도재(悟道嶺)도 청매 스님이 도를 깨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 삼불사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비구니 참선도량이지만 고향 집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함양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에 소재한 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말사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고승 영원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너와로 된 선방이 9채에 100칸이 넘을 만큼 내지리(內智異)에서는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고승 109명이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조선안록>(朝鮮安錄)에 기록돼 있는 사찰이다. 산행시작이라 경내를 눈어림으로 둘러보고는 상무주암으로 향했다. 가파른 산길을 쉬엄쉬엄 올라 빗기재에 도착하니 가빴던 숨이 겨우 진정됐다.

지리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짙은 운무 속에 갇혀 있다. 이럴수록 다음 암자나 전망대에서 나타날 조망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진다.

상무주암까지 산수국이 영접을 나와 산죽 사이로 도열해 있었다. 화창한 날씨라면 천왕봉과 만복대는 물론 반야봉도 보이는 곳이다. 지리산 주능선 파노라마 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로 익히 알려졌다. 상무주암은 고려 중기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약간의 수행승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했다고 전해진다. 지눌은 타락한 현세를 벗어나 참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펼쳤던 인물이었다. 암자의 현판 글씨는 원광(員光)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이 썼다.

▲ 문수암과 삼불사 사이 이정표.

상무주암에는 법당도 없고 절마다 흔한 문화재 한 점 없다. 이름은 암자라지만 주지인 무안스님이 편히 쉬는 가정집으로 보는 것이 옳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외부 노출이 이뤄졌기에 사진 촬영마저 금지하고 있었다.

산죽이 울창한 내리막 숲길 사이로 발걸음을 옮겨 문수암(文殊庵)으로 향했다. 임진왜란 때 마을사람 1000여명이 숨었다고 전해지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과 늘 마르지 않고 흘러나오는 석간수로 이름난 한 폭의 그림 같은 암자이다. 바위에 바짝 붙여지은 법당과 그 앞에 요사가 나타났다. 우산을 쓴 채 점심을 허겁지겁 먹던 널찍한 공터 바로 옆이었다. 천인굴의 크기나 전설, 유래는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문수암은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낸 혜암(惠菴, 1920~2001)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문수암에 닿자 비가 멎는가 싶더니 산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삼봉산(三峯山, 1197m)이 가운데에 우뚝 솟아있고 그 앞으로 백운산(白雲山, 904m)과 금대산(金臺山, 847m)이 살짝 보였다. 차라리 바다 같고 파도치는 듯 한 운해의 흐름은 천지창조의 장관이었다. 혜암스님의 상좌 출신인 이곳 주지 도봉스님은 구수한 사투리로 이날 비가 세 번째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천인굴에서 편히 공양을 하지 그랬느냐며 살갑게 챙기더니 직접 끓인 마가목차까지 일일이 건넸다. 여름철마다 문수암에서 홀로 하안거에 드는 도봉스님은 사진을 찍자는 청을 끝내 거절했다.

▲ 칠암자 순례 산행길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실상사는 지리산 자락 낮은 분지의 들판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비가 그치면서 운무 자리에 활짝 갠 하늘이 드러났다.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는 0.8㎞거리라 이내 도착했다. 삼불은 과거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현세불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을 일컫는다. 초라한 여염집 모습을 한 삼불사는 조선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깊은 산골마을의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들만큼 포근했다. 정갈한 앞마당과 소담스러운 경내에는 쑥갓, 도라지꽃이 지천이었고 예쁜 꽃들이 만발해 비구니의 손길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비구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귀여운 다람쥐들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날씨가 개면서 삼불사 옆 조망바위에 올랐다. 멀리 삼봉산이 우뚝 솟아있다.

삼불사에서 약수암으로 내려선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2.3㎞ 구간이지만 너덜지대의 연속이었다. 고저 차가 별로 없었지만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약수암은 이 와중에 일행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문을 거절하는 출임금지 협조문이 붙어있어 한참 돌아걸어야 했다. 어쨌건 여섯 번째 사찰에 당도했다.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 샘이 있어 이름지어진 약수암은 남원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줄기의 작은 산중턱 1㎞지점에 위치해 있다.

마지막 사찰인 실상사로 향했다. 천왕봉을 마주한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다. 우리나라 사찰이 대부분 깊은 산속에 있는 것과 달리 지리산 자락의 낮은 분지 들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지어진 절이라고 전해진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국사(洪陟國師)가 창건했다.

참선을 중시하는 선불교를 전파하며 번창했으나 조선시대에 원인모를 화재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이후 숙종 5년 침허(枕虛)대사가 상소를 올려 36동의 건축물을 들인 대가람으로 중건됐다. 고종 때 방화로 불타 다시 중건된 실상사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참화를 입지 않았다.

천왕문이 지키고 있는 실상사 입구에는 햇볕이 나 있었다. 지리산 칠암자 산행을 마무리할 즈음 지리산 천왕봉은 열리고 있었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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