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백두대간 제22구간(화령재~백학산~큰재)
거리 35.3㎞, 시간 10시간45분...산행일자 : 2016년 4월11일

▲ 백두대간 제22구간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만에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순한 산길을 타고 약 12㎞의 거리를 시속 5~6㎞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도착한 신의터재에 전 대원이 여유롭게 모였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인고(忍苦)의 침묵에 들었던 산이,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채울 날을 준비하고 있다. 에는듯 추웠던 날들을 이겨낸 여린 나뭇가지 끝으로 참새의 혀 같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연분홍 진달래는 여리고 애틋한 모습으로 인고의 산을 달래주고, 여명에 하늘을 나는 새는 겨우내 참았던 낭랑한 노랫소리로 산을 깨운다. 능선을 넘어가는 칼칼한 바람의 끝에도 연둣빛 봄이 날린다. 골짝을 흘러가는 물소리에도 기운이 느껴지고 무심한 듯한 산꾼의 발걸음에는 봄날의 여유가 묻어난다.

제22구간 들머리는 화령(火嶺)이다. 그 주변에는 화동(化東), 화서(化西), 화남(化南), 화북(化北)이라는 지명을 가진 경북 상주시 4개 면이 있다. 그렇다면 중심에 해당하는 화령도 당연히 화할 화(化)자를 써야할 것 같은데 불 화(火)자를 쓰고 있다. 원래 재의 지명은 화령(化嶺)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란 때마다 상주 중심지역을 지켜내기 위해 방어선을 쳤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불 화(火)자 화령으로 적게 됐다고 한다.

50여년 아이들 뛰어놀던 인성분교는
친환경 숲속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백두대간 막고 있는 사유지는 아쉬워
동식물 이동로 만들기 위한 관심 기대

쌀, 곶감, 누에를 이르는 삼백의 고장 상주는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지역이다.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따 영남을 경상도(慶尙道)라고 부르게 되었다. 예부터 상주는 지역적·지리적으로 영남의 주요 도시였던 것이다. 또 낙동강은 그 어원이 ‘낙양의 동쪽에 있는 강’이란 의미다. 상주의 옛 지명 낙양(洛陽)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상주는 지명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지역이란 느낌이다. 뜨거운 땅, 상주 화령에서 백두대간 22구간을 뜨겁게 열어간다.

▲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뭇가지 끝으로 새싹들이 돋아나고 연분홍 진달래는 여리고 애틋한 모습으로 인고의 산을 달래준다. 무심한 듯한 산꾼의 발걸음에는 봄날의 여유가 묻어난다.

화령에서 큰재까지는 한반도 내륙의 가장 깊숙한 곳이지만 해발고도 최저점이 약 250m밖에 되지 않는다. 헌걸찬 백두대간이 오르내리면서 맥을 이어 꿈틀거리다가 한반도 중원에 해당되는 이곳에 와서 낮고 완만하게 세(勢)를 낮춘 것이다. 또 한 가지 22구간의 특징은 약 35㎞에 걸쳐 길게 맥을 늘여놓았지만 동서남북 어디건 타 지역과의 경계지 없이 구간 전부가 상주땅 안에서만 대간을 이어간다. 그리고 이 구간의 산 이름도 딱 두 곳, 윤지미산(해발 538m)과 백학산(해발 615m) 뿐이다. 그만큼 완만한 구릉으로 형성된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화령에서 약 3㎞를 이동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윤지미산은 경사가 조금 급하기는 해도 230m 정도의 고도를 극복하면 되는 평범한 육산이다. 봄의 길목에 들어서인지 대원들의 걸음은 여유롭고 어두운 밤길도 움츠림 없이 활기가 넘친다. 윤지미산에 든 대원들의 모습에서도 급한 오름을 헤쳐온 흔적을 볼 수가 없다. 화령에서는 벚꽃이 하얗게 어둠을 밝혔고 산으로 진입을 하니 진달래가 란탄(Lanthan) 불빛에 화사하게 부서진다. 그동안 긴 동면에 들었던 산길을 열어와서인지 진달래를 반겨맞는 대원들의 환호성이 어둠속에서 연신 터져나온다. “반갑다. 진달래야!”

길은 순하다. 윤지미산을 내려선 뒤 대간 주능선에서 조금 벗어난 무지개산 삼거리 지점에서 약간의 고도를 올릴 뿐, 능선은 길게 어깨를 펼치고 대간 축을 형성하고 있다. 출발 때부터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와 하루를 깨우는 닭의 외침이 더러는 멀리서 더러는 가까이서 날이 밝도록 끊이지를 않는다. 산 가까이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고 오래전 듣던 고향의 소리만 같아 정겹기 그지없다.

오전 6시30분쯤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만에 약 12㎞를 지나온 것이다. 산행 종료 후, GPS를 열어 저장했던 데이터를 보니 시속 5~6㎞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산길이 순했다는 얘기다. 신의터재에 전 대원이 모여 여유롭게 쉬어가는데 우리가 지나온 화령을 향해가는 또다른 대간꾼들이 버스를 타고와 재에 내린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예사로 보이지가 않는다.

화령에서 큰재에 이르도록 도로를 건너야 하는 재가 신의터재, 지기재, 개머리재 등 세 곳이다. 대간을 넘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고갯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서낭당 터도 여러 곳일 정도로, 메가 낮으니 마을과 마을 간 교류도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의 능선이 완만하다해도 백두대간은 역시 백두대간이었다. 능선 아래 보이는 골짝은 경사가 급했고 골은 깊었다.

901번 지방도로가 넘어가는 지기재 주변과 901번 지방도의 사잇길에 해당되는 개머리재 전후로는 대간 능선을 따라 농장으로 이뤄져 있다. 대체로 길을 터 주고는 있지만 몇 곳은 아예 마루금을 막고 있는 곳도 있다. 요즘 행정당국에서는 생태계 보존 차원으로 백두대간 출입을 제한하는 곳도 있고 도로가 횡단하는 절개지는 터널을 만들어 복원하는 곳도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을 축으로 동식물 이동에 대한 환경보전에 관심과 투자를 하는 시대다. 백두대간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농장만큼은 원래 산으로 되돌려주는 농장 주의 양보와 관계당국의 관심을 기대해 본다.

 

지기재에서 간식을 먹은 뒤 2차로 도로가 횡단하는 개머리재를 지나고 백학산 오름을 앞둔 옛 개머리재까지 약 3.5㎞를 휴식 없이 진행한다. 큰 고도차 없이 길이 좋아서였다. 재를 중심으로 주변 지형이 개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개머리재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넉넉히 쉬어서 백학산 오름을 준비한다.

길은 진달래 화원의 연속이다. 보암직하기도 하고 공연히 설레기도 한다. 무심히 스쳐지나기에는 내리는 햇살 아래 여리게 웃는 꽃잎이 너무 어여쁘다. 바람처럼 물처럼 메임 없이 걸어보리라 나선 길이지만 명치끝으로 뭉글뭉글, 연분홍 진달래 꽃물이 자꾸만 물들어 온다. 내게로 와서 꽃이 되라고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오전 10시15분에 백학산에 들었다. 지나온 거리 23.5㎞ 지점의 산정에서 식사를 하고 진행을 한다. 큰재까지는 아직도 약 12㎞를 더 걸어야 하지만 마음은 오늘 목표지점까지 9부 능선을 넘어선 것 같다. 산길이 아무리 좋다한들 90여리에 가까운 길을 하루에 헤쳐가야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 만무하다. 그러나 대원들은 대간 길 수백 킬로미터를 동행해온 동료들과 끊임없이 인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면서 즐겨 길을 잇는다. 연분홍 꽃잎에, 연둣빛 새싹에 겨워하며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맡겨 입산의 정취를 맘껏 누리며 걷는다. 백학산에서 큰재까지는 지나온 길보다 오르고 내림이 심했다. 하지만 이미 스물두 번의 대간산행 경력이 붙은 대원들에게는 문제될 게 없었고 장거리 산행에 대한 나름의 대처법도 생겨나 있었다.

▲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제22구간 날머리 큰재에는 화려한 봄이 무르익어 있었다. 68번 국도가 백두대간을 가르며 재를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가로수로 심은 벚꽃이 눈이 부실 정도로 만개해 있다. 1949년에 개교해 5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97년 폐교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는 상주시에서 백두대간 생태공원으로 조성을 해 휴양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적으로 말끔하게 단장을 해놓아 숲속공원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먼 산길을 이어온 대원들에게 큰재의 풍광은 산길의 고단함을 씻어주고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갈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원들은 힘들게 메고 온 배낭을 내려놓고 먼길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큰재의 환경을 넉넉히 즐긴다.

생태공원 벤치에 가만히 몸을 맡겨 봄볕을 쬐고 있자니 꽃잎처럼 가벼워지는 육신, 이런 느낌 때문에 저 길을 그렇게 달려온 것일까.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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