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청도 운문사 솔바람길

▲ 경북 청도 운문사 초입에는 1.2㎞남짓 이어진 솔바람길이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향긋한 솔내음이 묻어나고 검붉은 철갑으로 껍질을 두른 적송들의 정취가 일품이다. 숲길을 걷다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는 숲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힐링 여행지다.

인근 삼계리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가 잠시 들른다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도 좋다.

매표소에서 운문사까지 구간에는 소나무 숲길이 1.2㎞남짓 나 있다. 이 숲길을 운문사 솔바람길이라고 부른다.

▲ 만세루에서 본 대웅보전

길 입구부터 맥문동이나 개망초, 꽃무릇, 짚신나물 등 야생화가 산객을 맞아준다.

숲길에 들어서면 구불구불 춤추는듯 굽은 소나무들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일행이 있다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좋다.

발걸음 맞춰 걷다보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바람속으로 사라진다. 운문천(雲門川)이 솔바람길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이어진다.

햇살을 받아 퍼지는 윤슬은 수면으로 잔잔하게 이는 물비늘과 언제나 짝이다.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더해지니 느리게 걸을수록 더 상큼하다.

매표소에서 운문사까지 소나무 숲길
맥문동·개망초 등 야생화 산객 맞아
작갑교 지나면 검은 기와 얹은 절집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지나가면
운문사 중심 대웅보전·만세루 나와

솔바람길에는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향긋한 솔내음이 묻어난다. 수백 년은 됨직한 노송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서로를 끌어안거나 키 재기를 한다. 긴 구간은 아니지만 껍질을 검붉은 철갑(鐵甲)으로 두른 적송들의 정취가 일품이다. 누가 그랬던가. 여름철 피톤치드 배출량을 비교했더니 편백나무보다 소나무에서 훨씬 많이 나왔다고….

▲ 화랑동산 내 보리수나무 옆 성모자관세음보살 석조입상.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솔바람길 입구에 <법구경>(法句經)의 한 구절을 옮겨놓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나무데크 구멍속으로 포박을 당한 소나무 둥지가 전자발찌를 찬 것 같아 안쓰럽다. 우리 땅의 터줏대감인 소나무들이 무슨 죄라도 지었기에 굴레처럼 속박되어 있을까.

제주올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곳에도 탐방로 조성 열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드나드는 길이 있지만 그 바람에 일부 구간에 나무 데크를 놓은 게 분명하다.

가지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산객들이 땀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숲길 건너 정자 옆에는 초로의 어르신들이 다리를 쭉 펴고 담소를 나눈다.

▲ 범종루에서 보이는 경내

너른 밭에서 무성히 웃자란 강아지풀은 간간히 핀 코스모스와 입맞춤을 한다. 하지만 울긋불긋 가을은 주변 숲속에 꼭꼭 숨어있다.

솔바람길을 따라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온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주홍빛 과실이 매달렸던 감나무들과 온통 노란빛이던 은행나무는 아직 가을과 멀다.

작갑교(鵲岬橋)를 지나면 절집이 보인다. 검은 기와가 바랜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범종루(梵鐘樓)에 닿는다. 대부분의 사찰에 일주문(一柱門)이 있지만 운문사는 범종루가 입구를 겸한다.

▲ 처진 소나무

범종루를 통과하자마자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처진 소나무’ 한 그루가 반겨준다. 수령 500년이 넘었을 이 소나무는 높이 6m, 가슴높이의 주위 둘레가 3.5m에 달한다. 모든 가지들이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지만 솔잎이 싱싱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운문사는 매년 봄에 12말의 막걸리를 물에 타 소나무 주위에다 뿌린다고 전해진다. 나무 크기에 비해 뿌리가 약해 뿌리가 땅과 잘 밀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 비로전 뒤 극락교를 건너면 죽림헌이 나오지만 일반인 출입금지.

이 소나무를 지나면 운문사 중심전각인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만세루(萬歲樓)에 닿는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사찰이다. 진평왕때는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은 화랑정신의 발상지이다. 원광이 세속오계를 지은 뒤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一然) 스님이 기록을 남긴 <삼국유사>(三國遺事) 탄생지이기도 하다.

운문사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또는 작갑사(鵲岬寺)로 불리던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옛 대웅보전, 새 대웅보전으로 나눠져 두 곳이다. 보물 제835호인 대웅보전이 너무 오래돼 새로 지었지만 보물 이름을 바꿀수가 없어 옛 현판을 그냥 달고 있다. 운문사에서는 새 대웅보전과 구분하기 위해 옛 대웅보전을 비로전(毘盧殿)이라고 부른다.

▲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절 마당에 강렬한 햇볕이 내리쬔다. 산사도 폭염에는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능소화가 화사하게 지키고 선 불이문(不二門) 너머로는 안채가 보인다. 수행공간이라며 발길을 돌려달라는 문구를 보니 비구니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운문사는 학인스님들이 불법을 닦는 승가대학이자 여승들만 모여 수양하는 국내 최대 비구니 도량이다. 지세(地勢)가 웅대한 호거산(虎踞山)이 병풍을 친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구름 문’이라는 절 이름같이 계절이 바뀔때면 절집을 에워싼 구름이 ‘하늘 문’을 연다. 앳된 비구니가 없다면 저 바람이 산마루 구름을 슬쩍 걷어가 버릴까.

절터의 지형이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흔히 연꽃송이에 비유되곤 한다. 비구니들의 음성과 미소를 만날 때면 연꽃 속에 머물고 있는 기분일까.

경내에는 비구니들의 섬세한 손길로 만든 화랑동산도 있다. 신라 화랑의 발상지였던 것을 강조하려는 듯 대웅보전 뒤로 가꿔놓은 작은 동산이다.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성모자관세음보살(聖母子觀世音菩薩) 석조 입상도 있다. 여기저기 틈새로 동전이 얹혀져 있다.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이다지 잘 표현했을까. 경주에서 1950년대에 출토됐다는 통일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像)이 연상된다.

작은 오솔길도 나오고 등나무 벤치도 있다.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다보면 무더위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더라도 어디에서 오는지 묻을 필요가 없다. 마음도, 생각도 조금 내려놓고 명상을 할 수 있다면 그뿐이다. 어느새 속세를 떠나 있는 기분이다.

사리암(邪離庵)은 북대암(北臺庵)과 함께 운문사에서 가장 효험 있는 기도 도량이다. 석가 열반 후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구제한다는 나반존자(那畔尊者)상을 모신 암자다. 돌계단을 40여분 올라야 하지만 기도를 하기 위해 찾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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