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너는 나의 생명수

 

“꿀꺽, 꿀꺽” 포동포동한 포도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먹고 또 아무리 따먹어도 포도나무에는 탐스런 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온 세상이 포도천국이다. 학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내팽개쳐진 가방이 보이고, 단발머리 곱게 땋은 여고생이 된 나는 왕방울만한 포도를 정신없이 따먹는다.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아~ 그런데 꿈이다. 깨어보니 달콤한 포도향기가 입안 한 가득이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포도 꿈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세상물정 모르던 남편은 어설프게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비싼 이자에 늘어가는 빚 때문에 남편은 과민성 대장염으로 자주 아팠고 우리 가족은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급기야 나는 어린 젖먹이를 떼어놓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직장동료가 5년 부은 500만원 적금을 탔다면서 자랑하는데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농촌진흥청, 9월 이달의 식재료로 선정
젤리·잼·포도주 등 다양하게 섭취 가능
노화방지·항암·피로해소 등 효과 다양

월급날이 되면 빚 갚을 생각에 삶의 의욕을 잃었다. 하루하루 마지못해 살고 있던 어느 날, 포도를 맛있게 먹는 꿈을 꾸었다. 바로 그날, 남편은 교직원공제회에서 대출을 좀 내달라고 하였다. 빚이 산더미인데 또 빚을 내다니…. 이성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포도 먹는 꿈 때문이었는지 망설임 없이 즉시 대출을 해주었다. 아! 그런데 그게 인생역전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이야. 남편이 대출한 돈으로 매입한 장외통신주가 급등하면서 ‘대박’이라는 것을 맞게 되었다. 빚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마이너스가 아닌 0원에서 살림을 하게 되었다.

2000년 밀레니엄 새해 첫날, 우리 가족은 기장 달음산에 올라가서 떠오르는 태양에게 외쳤다. “야~호!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허황된 꿈은 꾸지 않았고 꼬박꼬박 적금을 들어 집도 사고 지금은 해피엔딩이다.

포도는 우리 가족을 구해준 생명수이다. 생명수의 의미는 깊고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깨달음, 성장, 재생의 의미 그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기쁨’ ‘박애’ ‘자선’이라는 꽃말처럼 날마다 성장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에게 받은 그 향기로움으로 어느 새 기운이 나고 자꾸만 힘이 생겨났다. 포도의 진한 향기를 그대로 모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질 때면 지쳐있는 그 누군가를 데리고 무작정 포도밭으로 간다.

며칠 전에는 친구와 함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충북 영동 포도축제장에서 포도향기를 그득 담아왔다. 가을의 우의를 입고 포도따기 체험을 했고 신나게 먹고 웃고 즐기면서 포도넝쿨처럼 활기찬 삶과 성장을 기원했다. 가을 해바라기가 되어 생명수를 맘껏 마시고 왔으니 한 동안은 또 삶의 무게를 잘 견뎌낼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9월 ‘이달의 식재료’로 포도를 선정했다. 포도는 생으로 먹거나 젤리, 즙, 포도주, 식초, 잼 등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혹자는 포도주를 악마의 선물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인은 감기를 포도주로 다스린다. 적포도주에 레몬, 오렌지 등을 넣어 끓인 뱅쇼(vin chaud)를 마신다.

▲ 박금옥 개운초등학교 영양교사

포도는 안토시아닌이라는 항산화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해 ‘신이 내린 과일’ ‘과일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껍질과 씨에 들어있는 라스베라트롤은 노화방지 및 항암효과가 있다. 과육은 무기질이 풍부해 원기를 회복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무기력감을 없애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당분함량이 높아 체내에 빠르게 흡수돼 피로해소에 효과가 있다.

포도는 알이 굵고 껍질색이 짙고 표면에 하얀색 분이 묻어 있는 게 좋다. 하얀색 분은 천연 과실 왁스로, 뽀얗게 덮여 있을수록 일찍부터 봉지를 씌워 재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안심하고 구매해도 된다. 보통 포도의 단맛은 포도송이의 꼭지부분이 달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아래쪽을 먹어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포도가 익어갈 때 포도밭에 남녀가 함께 들어가지 마라, 포도향기에 취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런 말이 있다.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포도밭으로~.

박금옥 개운초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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