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울주 상북 지내리 신광사(信光寺)

▲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코스의 종착점이자 제3코스 시작점에 있는 신광사(信光寺)가 풍요로운 들판과 잘 어우러진다. 낙동정맥의 기운이 벼가 누렇게 익은 들녘까지 스며있는듯 하다.

어느덧 들판이 연노랑으로 변해 있다. 길가에 듬성듬성 핀 코스모스와 더불어 가을이 우리 곁으로 훌쩍 다가왔다. 체감온도는 아직 늦여름인데 풍요로운 들녘은 계절의 변화가 벌써 시작됐다. 벼 수확이 시작되면 갈색으로 탁해질 가을 들판을 즐기기엔 지금이 적기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 지내(池內)마을은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이 넘쳐난다.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고헌산(高獻山, 1033m) 끝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큰못의 안쪽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못안’ 또는 ‘지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언양읍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된다. 영남알프스나 밀양·청도 쪽을 오갈 때 ‘못안못’ ‘대리앞들’을 앞세운 이 마을 들판의 절경에 시선을 빼앗겨온 터다. 나락이 익어 바람에 일렁이는 들판과 논 주변 군데군데 오리집의 풍광이 조화를 이뤄 언젠가부터 찾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곳이다. 국도 24호선 상북면 지내교차로에서 발걸음을 시작했다.

고헌산 끝자락에 자리한 상북면 지내마을
큰못 안쪽에 위치해 ‘못안’으로 부르기도
한때 국내 최대 유기농 ‘오리쌀’ 재배
둘레길 2코스 종착점이자 3코스 시작점
가정집 닮은 소담스러운 신광사를 거쳐
오지마을 옛길따라 18.5㎞ 걷기 안성맞춤

명동저수지를 지나 대리(大里) 꽃마을이 산책로처럼 시작된다. 대리는 지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적어도 1년 전까지 68㏊ 규모의 우리나라 최대 오리농법 단지가 있었다. 2002년 이 마을 90여 가구는 오리작목반을 결성해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당 250마리의 교배종 청둥오리를 풀어놓았다. 갓 부화한 새끼 오리들은 이리저리 다니면서 해충과 잡초를 제거해주었다. 농약을 안 써도 됐고, 배설물은 자연비료가 됐다.

▲ 국도 24호선 지내교차로를 벗어나지마자 대리·신리 마을이 시작된다.

이렇게 생산된 친환경 유기농 쌀은 ‘상북오리쌀’이라는 상표로 판매되면서 한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서 사육하던 오리가 1만5000여 마리에 달할 정도였다.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상북오리쌀’은 일반 쌀보다 20%나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농사가 끝나고 나면 다 키운 오리는 식용으로 팔 수 있어 농민들에게는 일거양득의 수입원이었다. 어린이 체험학습장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오리 떼가 뒤뚱거리며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리농법 농사가 너무 힘들다며 작목반을 해체하고 올해부터 오리쌀 재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75세를 훌쩍 넘겨 오리 관리에 힘이 부치는 게 큰 문제였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싸고 품질 좋은 친환경 쌀이 쏟아져 나와 경쟁력도 잃었다. 오리농법으로 영화롭던 대리앞들에는 붉은색 지붕에 파란색 몸체의 오리집만이 넓은 들판을 지키고 있다. 들판을 지켜보던 한 농부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옛날 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언양 쌀’로 유명했던 쌀 산지도 시대의 변화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 신광사는 일반가정집 같지만 소담스러운 단층짜리 절집이다.

신리·대리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니 ‘말랑몰길’이라고 적힌 도로명이 재미있다. 해당 지역의 옛 지명을 반영한 것으로, 말랑몰은 ‘산마루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향산다개로(路)를 따라가다 약간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왼쪽으로 대리마을, 오른쪽으로는 ‘붉은 덕(赤峴)마을’이 나온다. 붉은 덕마을 뒷산의 흙 색깔로 보아 ‘붉은 언덕’을 의미하거나, 붉은 기운이 감도는 흙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작은 교차로를 지나서는 약간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신리마을로 가는 중간에 못안1길로 우회전을 하면 오른쪽으로 가장골이다. 못안1길로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신광사와 지석묘가 차례로 나오고, 왼쪽으로는 재궁골, 당수골들이 나온다.

신광사(信光寺)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코스의 종착지 입구에 있다. 도로를 따라 일반가정집 같지만 소담스러운 단층짜리 사찰이다. 이 절집은 월암당(月岩堂) 순응(順應, 속명 문홍섭, 1930~2006) 대선사가 1976년 창건했다. 통도사 태허(泰虛)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통도사 말사인 언양 화장사(花藏寺), 굴암사(窟岩寺) 등의 주지를 지냈다. 순응 스님은 불기 2550년 10월31일 세수 78세, 법랍 58세에 신광사를 오심(悟心)스님에게 맡긴 뒤 열반에 들었다. 오심 스님은 통도사 포교국장과 교무국장, 언양 신광사 주지 등을 역임했고 2013년 10월 말 동구 화정동 월봉사(月峯寺) 주지로 있던 중 울산불교방송 제3대 사장에 취임했다.

▲ 지내마을 못안못은 약 500년 전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는 저수지다.

상북면은 영남알프스에 둘러싸여 있다. 가지산, 신불산, 고헌산 등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신광사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코스의 종착점이자 제3코스 시작점이기도 하다. 제3코스는 울산 속의 오지라 부를만한 마을들을 옛길을 따라 이어가는 코스다. 못안못 인근 신광사 앞에서 두서면 내와리 내와마을 서어나무 앞까지는 총 18.5㎞ 구간이다. 신광사 주차장에서 오른쪽 들판 길로 들어서면 재궁곡마을(쟁골마을) 방향이다. 들판 사이로 열린 콘크리트길 왼쪽으로 오리농법 벼 재배시설들이 보이고 그 뒤로 고헌산이 솟아 있다. 낙동정맥의 기운이 신광사 앞 들판에까지 스며있는듯 하다.

신광사를 지나면 못안못 방면으로 지내리 지석묘가 나온다. 1998년 10월19일 울산시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됐다. 규모가 작은데다 허름한 포도밭에 버려진 모습이 안쓰럽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이지만 자칫 찾지 못한 채 지나칠 수도 있어 보인다. 언양읍 서부리에 위치한 제2호 언양지석묘와 비교해 관심도 받지 못하고 관리가 허술해 판이한 대접을 받고 있다. 신광사 길 건너편으로 재궁못이 있고 산 아래의 마을은 재궁곡 또는 쟁골로 불리는 마을이다.

 

신광사에서 만난 이지(二知)스님은 밤공기를 맡아보면 여러 가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못안못 부근에서 축사의 분뇨냄새가 불어오기도 하지만 벼꽃이나 옥수수 꽃이 필 때면 그 향이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신광사 앞마당에는 만삭의 개 한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벼꽃이나 옥수수꽃 향기에 반한건지, 축사에서 불어오는 분뇨냄새에 마취가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내마을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여럿 있다. ‘못안못’ 또는 ‘큰못’이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가장 넓다. 약 500년 전에 축조한 곳으로 유역면적 128㏊, 유해면적 1.1㏊규모다. 못안못은 내력이 있는 저수지다. 조선 예종 원년(1469)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언양현조에 초산제(草山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453년 시작돼 1477년(성종 8년) 완성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의 편찬과정에서 작성됐다. 이 못은 농경사회일 당시부터 논 100마지기의 면적으로 축조한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못안못은 예부터 잉어 잡이 풍습으로 유명했다. 한 번씩 가뭄이 들면 수굴을 뺀 뒤 주야로 며칠간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한 전설에 따르면 밤에 횃불을 들고 불야성을 이루며 잡는 ‘못안못 잉어잡이’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고 전해진다. 밤새 이전투구를 하다 새벽녘에 물가 개펄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으면 앙금이 가라앉은 물가에 쫓겨나와 한가로이 노니는 대어를 발견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키보다 더 큰 황금빛 잉어였다. 이 잉어를 일러 ‘채이만한(처녀만한) 잉어’ 또는 ‘짚단 같은 잉어’ 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신광사에서 못안못 쪽으로 나오는 길. 못 둑에서 안쪽으로 바라보면 수초가 뒤덮인 끝부분이 제법 멀어 아득하다. 사계절 가리지 않고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 이곳 주변에는 대리못, 재궁곡못, 송내골, 당꼭못 등의 작은 저수지도 있다. 초가을 오후의 햇빛을 담은 수면이 눈부실 때다. 언양종합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가 보인다. 이미 지나간 버스다. 다음 버스는 언제 오려나. 글·사진=박철종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