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터

▲ 외솔 생가는 함월산 제4지맥의 2차 지맥이 개장(開張)되는 중심에 들어와 좌우 산에 감싸져 있다. 마치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보금자리에 해당된다.

태화강변에서 바라보이는 함월산(含月山)의 능선은 전체적으로 누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들의 조상 선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특정 선영 주변에는 공통적으로 반드시 누운 타원형의 산이 위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명당 혈(穴)주변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계류수가 명당수 역할을 하는 경우 학문에 출중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것은 풍수적 견해이다.

근대 울산을 부자 도시로 만드는 데 있어서 함월산은 큰 기운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도 울산 발전의 동력적 기운을 제공하는 신령스러운 산이기에 아름답게 잘 가꾸고 되도록 원형을 잃지 않는 개발이 필요하다.

함월산 능선 ‘누운 타원형’ 대기업 대표들의 조상선영과 유사
함월산 4개 지맥중 하나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와 연결돼 있어
생가 좌우의 산, 닭이 알을 품는 형국…토질도 단단하고 밝아
방 내부의 맑은 정기, 새로 개관한 외솔한옥도서관과 잘 어울려

필자는 편의상 함월산 지맥을 크게 4개 지맥으로 나눠 태화강을 향해 내려오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 중심 지맥은 옛 울산기상대로 이어지는 함월지맥이다. 옥교동 시계탑까지 연결되면서 동헌(옛 울산도호부~울산군청)과 울산시청을 탄생시켜 부자 울산의 토대를 세우게 했다. 우백호(右白虎)는 우정동 한국석유공사~선경아파트~마제스타워로 오는 지맥으로 태화강에 이른다. 내청룡(內靑龍) 지맥에 해당되는 학성동 울산mbc~충의사(忠義祠)~학성공원으로 이어지는 맥은 태화강을 건너 삼산본동이 있는 아데라움아파트에 연결된다. 또 한 지맥은 병영성을 거쳐 병영시장으로 연결되는 지맥으로 동천강으로 들어간다.

▲ 생가의 좌청룡에 새로 지어 6일 개관한 외솔한옥도서관.

주맥에서 내려오는 살아있는 산줄기가 여러 개로 중첩되어 있으면 그 품속에는 반드시 명당 혈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제4지맥에 있는 대한민국 국어학의 태두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 선생 생가이다. 함월산 지맥이 여러 갈래로 이어지는 울산 중구는 명당 혈이 많았지만 작금은 우정혁신도시 개발로 인해 많이 소실됐다.

전국으로 명당을 산책하다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문중(門中)이나 특정지역에 편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될 때가 있다. 이는 비슷한 풍수환경의 산세에서 나오는 땅 기운의 영향을 공통적으로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울산을 대표하는 인물 중에도 함월산 지맥 중구의 정기 영향을 받고 성장한 예가 많다. 길게 늘어진 지맥이 있으면 그 주변에는 짧은 지맥이 형성된다. 이 짧은 지맥이 긴 지맥에 둘러싸이게 되면 바람이 모이는 장풍지역이 생기고, 장풍지역은 바람이 모이는 고기압이 형성되어 명당 기운의 혈 자리가 만들어진다. 함월산에서 뻗어내려오는 지맥들의 구조가 이러한 지세 지형구조로 되어 있다.

▲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앞 기념 조형물,

제4지맥에 해당되는 병영성(兵營城) 둘레를 걸어보면 자동차 전용도로인 동천서로(東川西路)가 시작되는 교차로 부근에서 견(堅)지반 위에 융기한 지맥이 황토산으로 아주 튼실하고 힘있게 기복(起伏) 변화해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이 능선의 남쪽 기슭 품속에서 혈장이 만들어진 곳이 병영초등학교와 최현배 선생의 생가 터다.

풍수서에는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다. 사람은 땅의 신령스런 정기를 받고 태어나 그 정기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린 최현배는 좌청룡 우백호 산이 만들어주는 명당 기운을 먹고 호흡하면서 성장했다. 일제치하의 굴욕을 받으며 자라는 동안 집 뒤 언덕에 올라 멀리 바라보이는 비단결 같은 산을 응시하며 우리것은 반드시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꿈을 키워가는 소년이었을 것이다.

▲ 외솔기념관

외솔 생가는 함월산 제4지맥의 2차 지맥이 개장(開張)되는 중심에 들어와 좌우 산에 감싸여 있다. 마치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보금자리에 해당된다. 울산 중구 병영12길15에 있는 생가는 함월산 지맥이 동남쪽으로 내려와 병영성 언덕에서 기운을 융기시켰다. 이 기운은 다시 동쪽으로 뻗어 생가의 뒷산 현무봉을 세웠다.

생가는 좌우로 팔을 벌린 지맥의 중심공간에 있다. 산의 배쪽 능선에 위치하며 토질이 단단하고 색깔이 밝고 환하다. 생가 터에는 항상 병아리를 부화하는 양명한 기운이 유지되고 있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읽어주면 될듯하다. 금계포란형의 특징은 수많은 알을 부화하는 기운이다. 후학을 가르치고 기르는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고, 많은 제자들은 선생을 추종해 따르는 기운과 통한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키우는 정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생가 뒤쪽의 <우리말본> <한글갈> 기념 푯돌.

안산으로는 저두산(猪頭山:돋질산의 옛 이름)을 넘어 석유화학단지가 개발되기 전에 있었을 오밀조밀한 산들이 계란형으로 줄지어 있어 사전 책갈피 같은 비단결이 연상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선생이 태어날 당시 과거 지맥들은 전후좌우로 주택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만 그 당시 주변의 능선에는 많은 나무들이 서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생가 주변의 수세(水勢)를 살피면 약사천과 동천강이 생가에서 멀리 떨어져 앞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가 객수인 태화강과 만나 동해바다에 연결된다.

생가의 대지는 ‘ㅁ’자형이며 본채와 아래채로 되어 있다. ‘ㄷ’자형의 초가집 가옥구조로 2009년에 복원됐다. 생가로 들어가는 출입구인 삽짝문은 생가의 좌청룡 기운을 받아들이는 동남쪽으로 나있어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생가 뒤쪽에는 선생 내외의 무덤비와 푯돌이 있다. 2009년 9월23일 선생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길 때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 있던 외솔선생 내외의 무덤비와 <우리말본> <한글갈> 기념 푯돌을 유족들이 이틀 뒤 이곳으로 옮겨왔다. 생가의 본채 문을 열고 방 내부를 살펴보면 머리에 강렬한 에너지를 충전해주는듯한 맑은 정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생가의 좌청룡에 새로 지어 6일 개관한 외솔한옥도서관은 생가 터의 명당기운과 잘 어울린다.

▲ 외솔기념관 입구의 최현배 선생 동상.

외솔 선생은 이곳에서 1894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살았다. 이후 서울로 가 경성보통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글학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이 세운 조선어강습원에서 3년 동안 한글과 문법을 배웠다. 이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로 부임하면서 적극적으로 한글 연구에 힘썼다. 1929년에는 사회각계 유지 108인이 조직한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의 준비위원이 되었고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그러나 1938년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윤치호(尹致昊, 1866~1945) 등과 함께 흥업구락부 사건에 관련되어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외솔선생은 집에 있으면서 훈민정음의 역사와 이론에 대해 연구하여 <한글갈>을 펴냈다. 그러나 1942년 다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돼 해방 때까지 옥살이를 했다.

▲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 소장·풍수공학박사

이병직(94) 초대 울산교육장에 의하면 일제치하 한국 국민들이 생필품이나 보급품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말을 한마디 이상이라도 해야 했다. 일본식 사범학교, 철도, 항공학교 등 소위 사회지도층을 양성하는 학교는 학비를 전액무료 지원하는데다 학생들에게 월급을 지원했다. 일본에 동조하는 지도자 양성의 차원이었다. 또 상투를 틀고 다니는 사람을 잡아 강제로 상투를 자르고,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에게 몰래 물감을 뿌려 입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일본은 한국인을 말살시키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사회여건 속에서도 선생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옥고를 치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 만대에 길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스승이다.

광복 후에는 문교부(현 교육부의 전신) 편수관, 학술원 회원, 한글학회 이사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연세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나라사랑의 정신과 겨레의 얼을 되살리는 일에 헌신했다. 1970년 3월 그가 세상을 뜨자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 <우리말본> <한글의 바른길> <한글갈> <한글의 투쟁> <고등말본> <중등말본> <나라사랑의 길> 등이 있다.

좋은 땅은 좋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 기운으로 좋은 사람을 낳고 좋게 키운다. 반대로 나쁜 땅은 나쁜 사람을 나쁘게 낳아 나쁘게 기른다. 좋게 태어나도 나쁜 땅에 이주해 살면 나빠진다. 나쁘게 태어나도 좋은 땅에 이주해 살면 좋아진다. 그래서 땅을 모든 것을 받아들여 그 기운대로 키우는 어머니의 품에 비유를 한다. ‘탈신공개천명’(奪神功改天命)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땅에서 나오는 명당 기운은 신(神)의 공력을 얻어 천명을 고친다는 뜻이다.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 소장·풍수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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