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버스 화재 참사 피해자들 안타까운 사연들

▲ 16일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관광버스 화재사고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울산 국화원장례식장 합동분향소에서 태화관광 임직원들이 유가족 대표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지난 13일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 참사는 처참한 현장의 모습만큼이나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남겼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거나 병든 노모를 집에 모시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로 아직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심장질환 남편 천신만고 끝에 살려놨더니 비명에 가고
든든한 아버지 온데간데 없고 불에 탄 휴대폰만 돌아와
생존자들도 가족같은 동료 잃은 슬픔에 트라우마 심각

◇“내가 다 살려 놨는데 이게 무슨 일이고…”

16일 오전 10시께 울산시 남구 상개동 울산국화원 2층에 마련된 관광버스 화재참사 사망자 10명의 합동분향소. 유가족들이 단체로 몰려들면서 분향소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영정사진을 보면서 여전히 사고 소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유가족들의 울음과 흐느낌, 오열만이 가득했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성모(62)씨의 아내 이모씨는 “내 남편 내가 다 살려냈는데 느그가 뭔데…내 남편 살려내라…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 성씨는 애초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아내 이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병마를 극복해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아흔이 다 돼가는 노모는 아직도 아들이 죽은 줄 모른다. 이걸 어떡하면 좋노”라며 누워서 눈물만 흘렸다. 슬픔을 못 이긴 이씨는 결국 합동분향소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키며 실신했다.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이씨는 정신이 들자마자 남편의 영정이 있는 분향소로 되돌아왔다.

◇딸 결혼식 3일 앞두고 참변

“오늘(16일)이 딸의 결혼식입니다. 회원들끼리 여행 해단식을 결혼식장에서 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사고의 생존자 김모(63)씨는 아내 이모(59)씨를 잃었다. 김씨 부부는 여행 내내 회원들에게 사위 자랑을 하면서 곧 있을 딸의 결혼식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김씨 부부의 아들은 “사고 당일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잘 하시지 않는 편인데 전화가 오길래 느낌이 이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원래 어머니는 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느낌도 안좋아 여행을 안가겠다고 했었다”며 “그래도 미리 잡혀있었던 일정이라 가는 김에 재밌게 갔다오시라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화상을 입고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여행 동료 김모(61)씨는 “부부가 여행 내내 결혼식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랬었는데 결혼식장에 설 수 없다는게 너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불에 탄 휴대전화 받아든 아들의 절규

“이걸로 전화라도 했으면 달려갔을텐데.아버지…”

노란 서류봉투를 건네받은 진민철씨는 국화원 분향소 영정 앞에서 오열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가족 대표 역할을 하며 사고 수습 내내 침착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버지가 버스에 남긴 유류품을 받아들고는 결국 오열했다.

진씨는 불에 타서 배터리가 터져버린 휴대전화 화면을 끝없이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는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이어 시커멓게 타버린 어머니의 금목걸이도 받아들어야 했다.

진씨는 이번 사고로 부모님과 숙모를 모두 잃었다. 그의 삼촌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봉투에서 유류품을 꺼내 보던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한명 한명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커지던 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변했다.

◇생존자들 불안증세 등 사고 트라우마 심각

함께 사고를 당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안도감보다, 3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가족같은 동료들을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고 있다.

버스에 타고 있던 회원 대부분은 한화종합화학 울산공장의 1979년 6월 입사 동기 모임의 이름을 줄인 ‘육동회’ 회원들이다. 회원들은 결혼, 출산, 자녀의 성장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친형제만큼 가깝게 지내왔다.

생존자들은 아비규환이 된 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사고 당시를 회상하기를 극도로 꺼려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

정세홍수습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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