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기부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
좀 더 잘하라는 격려이자 채찍

▲ 장재완 울산 중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임

평소에 관심있던 미국대선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 대변인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 ‘10월부터 11월8일까지 모두 1억4000만달러(약 1545억원)의 광고비를 쓰겠다’는 기사다. 더 흥미로운 점은 힐러리 후보가 대선후보에 공식 지명된 7월 이후 사용한 광고비가 이미 1억2000만달러라는 점이다. (같은 기간 트럼프 후보측은 2200만달러) 놀랍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 후보당 사용할 수 있는 법정선거비용이 대략 560억원이었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은 광고비만으로도 우리네 법정선거자금의 몇 곱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힐러리 후보측이 모금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자금을 10억달러로 예상한 언론사도 있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이 TV 광고에 목숨을 거는 것은 사실 당연한 수순이다. TV가 보급된 이후 미디어 광고는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데 한가지 예로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의 메케인 후보는 하루 90만달러를 광고비로 지출한 반면 오바마는 하루 330만달러를 사용해 선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광고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선거자금은 미국선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미국대선 후보들은 어디서 이러한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것일까? 미국의 연방선거운동법에 따르면 개인은 특정후보에게 한번에 1000달러씩 총 2만5000달러까지 기부할수 있지만 PAC라는 것을 통하면 한번에 5000달러까지 기부할 수 있고 기부 총액에 제한이 없다. 결과적으로 무제한 모금이 가능한 것이 PAC다. PAC는 정치활동위원회라는 의미인데 이익단체들이 만드는 선거운동 조직이다.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후보와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후보자에게 기탁한다.

일부 PAC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해 일명 슈퍼팩이라고 불리우는데 미국의 대선후보들은 이러한 슈퍼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구조가 꼭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민의를 주의 깊게 살피도록 만들기 때문에 때로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미카터 전 대통령은 “슈퍼팩 자금은 뇌물, 미국정치가 과두정치로 변질됐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슈퍼팩으로 인해 미국 정치판이 점점 더 극소수 슈퍼리치와 거대 기업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거액의 후원을 받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되는 바이다. 힐러리 후보는 중산층을 대변하고 월가를 개혁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대통령이 된다면 자신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그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럼 우리의 정치후원금 제도는 어떨까? 먼저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원회에 기부하는 ‘후원금’과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일정요건을 갖춘 정당에 배분하는 ‘기탁금’으로 나뉜다. 개인이 국회의원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500만원까지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1억원이다. 미국처럼 무제한 제공할 수 있는 경우는 원천적으로 법에서 금지하고 있어 후원금이 정책을 좌우할 여지는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액기부금이 줄어 부자들의 기부금 비율이 높아진다면 어찌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기부 또는 불법정치자금이 아닌 아름다운 정치문화를 이룩할 수 있는 소액다수의 정치후원금이 필요하다. 혹자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들에게 기부금이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개인들이 십시일반 내는 후원금은 지금보다 잘하라는 격려이자 채찍이 될 것이며 우리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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